북한 비핵화 여부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가 지난 28일 열렸다. 북한은 ‘국가 건설’ ‘국방 건설’에 관한 중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번 회의를 열었다고 강조했다. 2017년 군사 도발을 거듭하며 미국과 말폭탄을 주고받았던 ‘화염과 분노’ 시절로 돌아갈지, 2018년 진행됐던 북·미 대화 동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조선중앙통신은 2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28일 평양에서 소집됐다”고 보도했다. 당 전원회의는 당 정치국 성원과 중앙위 위원, 후보위원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로 국가 핵심 전략과 정책 노선 등이 결정된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핵무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실패할 경우 강경 노선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쳐 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연말까지 북·미 비핵화 협상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특히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정형과 국가사업 전반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역사적인 보고’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이 내년 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이전까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을 문제 삼으며 핵 개발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는 계획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우리 국가의 전략적 지위와 국력을 가일층 강화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진군 속도를 비상히 높여나가기 위한 투쟁 노선과 방략이 (전원회의에서) 제시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회의는 우리 당 역사에서 거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해 김 위원장이 선택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에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8년 4월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열고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집중 노선을 채택하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돌입했었다.
전문가들은 군사력 강화 방안이 논의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군사 분야에 초점을 맞춘 것이 새로운 길의 핵심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전략적 지위는 결국 핵무기를 말하는 것”이라며 “핵 보유 지위를 굳히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다만 북한은 내년에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종료되는 데다 당 창건 75주년인 점을 감안해 경제 발전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부흥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방력만 갖고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새로운 길은 29일까지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 전원회의 결과가 공개돼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전원회의는 계속된다”며 한 차례 이상 회의가 더 열린다는 사실을 알렸다. 다만 이번에도 지난 당 군사위 확대회의 때처럼 회의 결과를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은 뒤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구체적인 노선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전원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히면서 파급력을 끌어올리겠다는 포석이다. 전원회의 결과를 일부 공개하며 미국의 반응을 떠본 뒤 신년사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