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업계의 최대 화두는 ‘친환경 선박’ 기술이다. 전 세계는 지금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조선해운산업 분야에서도 선택이 아닌 의무로 인식되고 있다. 2016년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등 주요 항만과 함께 부산항은 세계 10대 미세먼지 오염항만으로 지목됐다. 국내 미세먼지 배출원의 약 10%가 선박에서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해운산업은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선박’ 기술 및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패러다임 시프트’ 조선해운산업
최근의 해운산업은 친환경 선박과 자율운항 선박으로 옮겨가고 있다. 친환경·스마트 선박이 대세인 셈이다. 이는 총체적인 불황에 빠진 조선해운산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여겨진다. 바다와 관련한 환경규제와 4차 산업혁명은 조선해운산업에 기술·정책·자본 등 전 영역의 대변혁과 산업계 지형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국제 환경규제 강화로 선급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한국선급은 수년 전부터 그린십(Green Ship),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개발하고 각종 국책연구과제를 진행해왔다. 다양한 국제적 이슈에 해사업계가 발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최신 국제동향을 세미나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국제해사기구의 의제 개발에 적극 참여해 국익 보호 역할도 하고 있다.
선급은 말 그대로 선박에 등급을 매긴다는 뜻이다. 한국선급은 선박 안전을 진단하는 기술단체다. 선급 산업은 아직 생소한 분야지만 우리나라 해사산업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선급은 선박검사를 통해 축적된 기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친환경 선박과 자율운항 선박 관련 기술, 함정, 인증 분야 등에서 관련 기술을 연구·개발해 대한민국 해사 기술경쟁력을 높여주는 선순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 13개 선급만이 가입된 국제선급연합회(IACS)에도 한국에선 한국선급이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다.
친환경선박의 미래상
2020년 1월부터 해사업계는 국제해사기구 황산화물규제(IMO Sulphur 2020)가 발효된다.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을 0.5%로 감축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는 LNG 연료추진, 스크러버, 저유황유 사용이 꼽힌다.
IMO는 2008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 40%, 2050년 70%까지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2050년까지 50%로 줄이겠다는 목표다. 궁극적으로 화석연료의 퇴출을 예고한 셈이다. 따라서 탄소 배출량이 ‘0’인, 탄소 중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이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 탄소 중립 연료는 바이오디젤 수소 암모니아다.
이에 따라 한국선급은 친환경 선박 기술역량을 높이기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해왔다. 2015년 설립한 군산 그린십기자재시험·인증센터(TCC)에서 친환경 선박 관련기술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엔 부산항만공사와 수소 기반 에너지 자립항만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디지털선급으로 전환
무인 항공기, 무인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자율 운항 선박’(Smart Autonomous Ship) 기술 수요도 늘고 있다. 조선·해운 분야의 미래 먹거리 역시 선박의 지능화와 스마트 자동화 기술 분야다. 이미 유럽, 일본 등지에선 민·관이 스마트 자율운항 선박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한국선급은 수년간 자율운항 선박과 해운항만 운용 서비스 기술개발을 추진해왔다. 사물인터넷(IoT) 융합 핵심기술, 플랫폼 구축에 따른 빅데이터 분석, 실선 규모의 시험 등을 진행했으며 성과도 내고 있다. 디지털 트윈(선박·제품·공장 등의 디지털 복제본)기술을 확보했고 상태기반 유지관리기술과 원격검사 서비스 제공을 위한 경제운항솔루션 개발에 성공했다.
선박 사이버보안 분야에선 특히 앞서있다. 선박 사이버보안은 배의 데이터와 이를 전달하는 네트워크, 데이터 저장소 등을 보호하는 기술을 말한다. 선박 대 선박, 선박 대 육상 사이의 정보교류가 많아지면서 수요가 점차 느는 산업 분야다. 한국선급은 해상사이버보안 관리 시스템 인증체계를 구축한 데 이어 해외 유수 선사에 독자기술을 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제협약 전산 프로그램(KR-CON)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선박정보 앱(SMART FLEET), 선박 구조해석 프로그램(KR SeaTrust-Hullscan) 등의 소프트웨어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 한국선급 이형철 신임 회장
“2025년까지 등록선대 1억GT 돌파해 선진 선급 도약”
“4차 산업혁명 시대 ‘자율운항 선박 기술’ ‘선박 사이버 보안 기술’ 등 디지털 선급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해사업계를 도약시키겠습니다.”
한국선급(KR) 제24대 회장에 선임된 이형철(사진) 회장은 2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회장은 “한국선급의 검사 수준이나 기술력은 해외 유수의 선급과 비교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면서 “조직역량과 인적 자원을 결집해 2025년까지 등록선대 1억GT를 돌파해 선진 선급으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해외 선주를 적극적으로 공략해 해외 선사 등록선대 비율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최근 국내외 해사업계의 불황 등으로 한국선급의 등록톤수는 6800GT에서 성장이 정체했다”며 “유럽 동남아시아 중국 등의 선사를 집중 공략할 방침”이라고 했다. 그는 해외 주요국의 해사업계 리더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과 기술세미나, 인적 네트워크 확대 등 영업 기반을 다져나갈 계획도 언급했다. 선급 영업의 성패는 선주와 화주 같은 고객이 그 선급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따라 좌우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8대 2 정도로 편중한 선급분야·비선급분야 수입구조 비율도 수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 회장은 “한국선급의 불안정한 수입 구조를 안정화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새로운 수입원 창출을 위해 인증, 미국기계학회 등 제3자 검사와 함정업무를 확대하고 기술공학과 같은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 한국선급의 발전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해사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