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지난 21일 강원도 평창군 슬라이딩센터 결승선(Finish Line)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였다. 얼음 트랙 위로 루지 썰매에 몸을 실은 선수가 빠른 속력으로 등장했다. 마치 아시아판 ‘쿨러닝’(자메이카 선수들의 봅슬레이 도전을 다른 영화)을 보는 듯했다. 선수가 천천히 속력을 줄이며 안정적으로 결승점에 다다르자 진행요원들은 환호했다. “정말 잘 탔어!”
제레미 프란시아(20)는 헬멧을 벗으며 “얼음 트랙은 아직 무섭지만 롤러코스터보다 재미있다”며 감탄했다. 뒤이어 케이트 얀손(17), 아타폰 와이프립(18) 등 다른 선수들도 도착했다. 강원도의 매서운 추위와 얼음 트랙이 그저 신기하기만 한 이들은 동계 스포츠 불모지에서 온 꿈나무 선수들이다.
코리아네이버스 산하단체인 국제스포츠인선교회는 지난 7일부터 27일까지 대한루지경기연맹과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후원을 받아 ‘2019 아시아 동계 꿈나무 선수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제5회 루지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아시아지역의 루지 저변확대를 위해 네팔 필리핀 태국에서 남녀 1명씩 6명을 초청했다.
프로젝트를 총괄해온 신다윗 목사는 “100여년 전 YMCA 소속 질레트 선교사는 야구단을 창단하고 조선 땅에서 스포츠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스포츠는 인종, 이념, 국경을 초월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라면서 “선교사들에게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 빈곤국 청소년들에게 신앙과 올림픽 출전의 꿈을 심어주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온 제레미는 홀어머니, 4명의 형제와 함께 나무판자를 엮어 만든 판잣집에서 살고 있다. 꿈꾸는 것조차 사치였던 그는 한국인 선교사가 설립한 대안학교에서 순발력, 기초체력 등 테스트를 거쳐 꿈나무 선수로 선발됐다.
제레미는 “한국의 도로가 너무 깨끗해서 신기했다”며 “루지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과 꿈을 심어준 국제스포츠인선교회와 한국교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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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은 우리나라 루지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단과 함께 합동훈련을 시행했다. 루지는 썰매에 누운 채 얼음 트랙을 질주하는 종목이다. 봅슬레이와 달리 핸들과 브레이크가 없어 발의 마찰을 이용해 속도를 줄인다. 선수들은 시속 150㎞를 달리는 루지 썰매에 적응하기 위해 맨땅에서 훈련받았다. 나무 썰매에 바퀴를 달아 몸의 체중을 이용해 방향을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선수들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지난 22일 ‘제5회 루지 아시아선수권대회’ 이벤트 경기에 참여했다. 스타트 5(투어리스트 스타트) 지점을 출발해 약 400m를 활주했다.
태국에서 온 아타폰은 “유니폼을 입고 활주해 보니 정말 국가대표가 된 것만 같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 꼭 출전하고 싶다”며 웃었다. 케이트는 “한국 방문 기간에 보여준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기독교인이 되고 싶어졌다”면서 “루지 국가대표가 돼 하나님께 꼭 영광을 돌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제스포츠인선교회는 꿈나무 선수들을 2022년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시킬 계획이다. 신 목사는 “각 나라의 선교사, 한국교회들과 계속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스포츠 선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평창=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