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가 소명되고 죄질이 좋지 않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
법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선뜻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문장을 함께 써넣었다. 법조계 일각에선 청와대와 검찰의 극한 대립 속에 법원이 중재안을 내민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속은 유죄, 불구속은 무죄’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제3의 길을 보이려 했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권덕진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지난 27일 조 전 장관을 향해 “구속될 수 있었으니 자중하고 수사와 재판에 협조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이해한다.
검찰과 법원이 영장심사에서 갈등할 때마다 중재안으로 거론되는 ‘조건부 석방제도’를 시범 적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구속 여부는 그동안 검찰 수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잣대처럼 이해돼 왔다. 일선 판사들은 “구속영장 심사는 이론적으로는 유무죄 판단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법원에 따르면 2009~2018년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의 무죄 선고율은 0.6%에 그쳤다. 영장심사가 ‘예심’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 수치다.
법원의 묘수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검찰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얼마나 무리한 판단이었는지 알 수 있다”고 발표했다. 대변인실 행정관은 페이스북에 “기각 사유에 ‘죄질이 좋지 않다’는 표현이 없다. 허위사실 유포”라고 주장했다가 글을 내렸다. 기각 결정문에서 ‘법치주의 후퇴’ ‘국가기능 저해’라고 표현된 부분이 보도자료에는 ‘죄질 불량’으로 순화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도 “혐의가 인정되고 죄질도 나쁘다면서 기각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예상대로 ‘격앙된’ 반응을 내놨다.
지난 8월 이후 조 전 장관 수사와 함께 촉발된 사회적 논란과 분열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장관이 구속됐느냐 안 됐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법치주의를 후퇴시키고, 국가 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했다’는 지적이다. 진영논리가 득세하는 가운데 사회의 룰이 망가져 가고 있다.
구자창 사회부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