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의 위헌성을 연일 강조하며 법안 처리 저지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27일 본회의가 열리면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표결 절차에 들어가고, 예산부수법안을 처리한 뒤 공수처법이 상정될 전망이다. 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과 막판 물밑 접촉을 벌이고 있지만 이견을 좁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이 공수처 설치법에서 가장 문제 삼는 조항은 ‘첩보 보고’에 대한 내용이다.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가 합의한 공수처법 수정안에는 ‘수사처 이외의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 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즉시 수사처에 통보해야 하고, 수사처장은 수사처 규칙으로 정한 기간과 방법으로 수사 개시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수처법이 현 상태로 통과되면 대한민국은 공수처 왕국이 된다”며 “공수처 입맛대로 수사할지 말지, 압수수색에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전혀 못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첩보 보고가 아니라 이첩 요구만 할 수 있어도 충분히 무소불위 권한인데 이 조항은 이첩하기 전에 최초 단계에서부터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라며 “내 마음대로 선택적으로 수사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시작하기도 전에 묻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한국당은 해당 조항에 대해 민주당 및 청와대 관계자와 협의하면서 일정 부분 수정하기로 합의했지만 민주당이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최종적인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민주당과 공수처 법안을 놓고 협의할 당시 사건 이첩을 ‘수사기관장의 협의에 따라’ 하기로 합의했었다”며 “그런데 그 규정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첩보 단계에서 보고를 받겠다고 한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선거법은 이미 본회의에 상정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끝난 만큼 표결을 막기는 사실상 어렵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공수처법이라도 본회의 상정 전에 요구사항을 최대한 관철시킬 필요가 있다. 이날 한국당이 민주당, 4+1 협의체 관계자와 대화를 재개한 만큼 막판 절충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검찰청도 “중대한 독소 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공개 반발한 만큼 여당이 이런 지적들을 다 무시하고 표결을 강행하기에는 부담이 큰 상황이다. 다만 민주당은 문제의 조항에 대해 공수처가 전국의 고위 공직자 범죄 혐의를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호 통보’를 통해 범죄 수사에 공백이나 혼선이 없도록 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한국당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임시회 회기 결정의 안건과 관련한 필리버스터 신청을 거부하고, 선거법 수정안을 기습 상정한 데 대해 이날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한국당은 선거법이 통과할 경우 헌법소원과 함께 마찬가지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했다. 27일 본회의가 열리면 민주당은 29일까지로 임시국회 회기를 정하고, 30일 새로 임시국회를 열어 공수처법을 통과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