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부채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경기 둔화로 수익성 지표에 ‘경고등’이 켜지자 기업의 이자지급능력이 반토막 났다. 신용등급이 낮아진 기업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고금리 대출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무분별하게 발행되는 저신용 회사채도 기업 부실을 부채질하고 있다. 저금리 기조로 값싸게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된 탓이다.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이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경영 전망은 한층 암울하다.
한국은행은 26일 국회에 제출한 ‘2019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올해 3분기 말 기업대출이 1153조원으로 1년 전보다 8.5%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은은 ‘비은행 금융기관의 기업대출이 높은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지목했다.
실제 비은행 금융기관 기업대출의 잔액은 올 3분기 말 286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 말보다 20.9%나 늘었다. 2016년 1분기 이후 15분기 연속 20% 선을 웃돌고 있다. 비은행 금융기관은 일반 은행보다 대출 문턱이 낮아 저신용 기업을 주고객으로 둔다. 상대적으로 고금리에 돈을 빌려준다. 비은행 금융기관은 저축은행, 상호금융조합, 보험회사, 여신전문금융회사 등이다.
한은은 대출잔액 증가에 따라 기업의 이자상환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올 상반기 기준 4.4로 1년 전(9.0)보다 절반 이상 쪼그라들었다. 이자보상배율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그해에 갚아야 할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수치가 낮을수록 기업 부담이 커짐을 뜻한다. 이자비용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기업(이자보상배율 1 미만)의 비중은 올 상반기 37.3%로 2014~2018년 평균(32.3%)보다 높았다.
한은은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대다수 업종에서 이자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대출 증가세가 뚜렷했던 상호금융조합의 연체율과 부실채권이 급상승하고 있다”며 기업리스크 ‘불똥’이 금융시장으로 튈 가능성도 열어뒀다.
시장에 쏟아지는 저신용 회사채도 기업 건전성을 해치는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저신용 회사채는 비우량 기업이 저금리로 낮아진 발행비용을 이용해 자금 조달을 하기 위해 내놓는 채권이다. 높은 이자를 조건으로 내는 회사채인 만큼 채무불이행 위험도 상당하다.
올 1~3분기 중 회사채 순발행 규모는 13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순발행 규모(6조3000억원)를 이미 배 이상 넘어섰다. 한은은 “올 들어 3분기까지 A등급 이하 회사채 비중이 31.7%로 지난해(27.3%)에 비해 높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다 한은은 기업 신용등급 하향 조정에 따른 ‘후폭풍’을 경고했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어 기업의 차입비용이 증가하고, 지니고 있던 채무의 상환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실제로 국내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상·하향 조정배율은 전기·전자, 자동차, 기계장비 업종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지난해 1.0배에서 올해 1~11월 중 0.5배로 떨어졌다. 쉽게 말해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이 올라간 기업보다 2배 많았다는 의미다.
한은 관계자는 “국내외 신용평가사가 향후 국내 기업의 경기 전망을 나쁘게 바라보는 만큼 유동자금이 부족한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