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홍석천씨가 14년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운영해온 식당을 최근 접었다. 이태원 경리단길은 송파구 ‘송리단길’, 마포구 망원동 ‘망리단길’ 등 전국에 ‘○리단길’ 열풍을 일으킨 ‘원조’ 거리다. 하지만 임대료 상승으로 식당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홍씨는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저를 오늘에 있게 해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태원 마이타이를 12월 9일까지만 영업하고 문을 닫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폐업 이유를 직접 밝히진 않았지만 과도한 임대료 상승이 원인으로 보인다. 홍씨는 지난 1월에도 이태원 식당 2곳을 폐업했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임대료 폭등과 최저임금제 여파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홍씨는 지난 5월 이태원 경리단길 상권 살리기를 주제로 방송프로그램까지 진행했으나 결국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임차상인)이 쫓겨나는 현상을 말한다. 도시를 병들게 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전국 주요 도시 및 상권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서울 성동구가 젠트리피케이션 폐해를 막기 위해 선도적으로 2015년 9월 조례를 제정했다. 지속가능발전구역을 지정해 주민협의체가 외부 입점업체를 선별하고, 임대료를 크게 올리지 않겠다고 임차인과 협약한 건물주에게 구청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성동구는 건물주·임차인과 함께 상생협약을 맺고 공공안심상가도 오픈했다.
아울러 2016년부터는 전국 37개 지자체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지방정부협의회를 결성해 공동 대응하고 있다. 성과도 있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2018년부터 상가임대료 인상률이 5%로 제한됐다.
이에 홍익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역상권 상생 발전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이정현 의원(무소속)이 대표발의한 ‘자율상권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과 합쳐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대안)을 마련, 지난달 22일 의결했다. 법안은 지역상권 구성원 간 상호협력을 증진시키고 자생적·자립적인 상권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역경제 활성화구역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 종합계획을 3년마다 수립·시행하도록 했다. 또 지역경제 활성화구역의 지정 및 변경, 해제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각 시·도에 지역상권위원회를 설치하고 상가임대차 계약에 관한 특례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은 국회 법사위로 넘어온 뒤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마지막 퍼즐’이 국회 본회의 통과 문턱에서 막힌 셈이다. 이대로 가게 되면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법안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26일 “그동안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지방정부 차원에서 건물주·임차인 간 상생협약을 추진하고 행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며 “지역상권 상생발전에 관한 법률안 통과가 젠트리피케이션 해결의 마지막 퍼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