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따뜻한 밥 먹을 수 있어서 오늘 행복했어요, 너무 너무…”

입력 2019-12-27 00:05
대전 가양감리교회 전석범 목사(왼쪽 두 번째)가 지난달 27일 아프리카 남부 에스와티니의 호호구 부헤부예즈 마을에 사는 시파만다 무둘리의 집을 찾아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아이의 이름 시파만다는 ‘하나님 힘을 주세요’라는 뜻이다. 강한 사람, 힘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러나 아이에겐 어쩌면 주님의 뜻에 따라 힘을 줄 누군가의 도움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시파만다 무둘리(5)는 아프리카 남부 에스와티니의 제2 도시인 만지니에서 80㎞를 달려야 도착하는 호호구 부헤부예즈 마을에 살고 있다. 전석범 대전 가양감리교회 목사가 월드비전을 통해 지난달 27일 시파만다를 만났다. 아이의 손을 잡고 “널 만나기 위해 사흘의 시간, 기도하며 왔다”고 말하는 전 목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파만다의 가족은 네 명이다. 보지도, 걷지도 못하는 여든을 훌쩍 넘은 할머니가 보호자다. 여기에 17살 누나 시넷질레 무둘리와 3개월 전 태어난 조카가 있다. 생계를 책임질 사람은 없다. 의지할 건 비정기적으로 나오는 정부 지원금뿐이다.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하다.

에스와티니는 2015년부터 엘니뇨로 인한 가뭄으로 기근이 심화됐다. 옆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경제를 의존해야 한다. 피해는 노인과 아이 등 취약계층에 고스란히 돌아갔다. 부모는 돈을 벌겠다며 아이를 버렸다. 시파만다의 부모도 그렇게 떠났다. 누나 시넷질레도 같은 이유로 아이와 함께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았다.

전 목사와 동행한 같은 교회 방장옥 장로와 이상민 장로의 후원 아동 시페실레 음크라바치(7)나 시보니소 마가굴라(10)도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두 아이는 할머니의 나이가 많지 않고 건강해 형편이 나았다. 세 아이는 한국월드비전이 지원하는 에스와티니의 3개 지역개발사업장(ADP) 중 마들란감피시 ADP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사업장은 식수위생, 모자보건, 교육, 아동후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전 목사가 시파만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갈댓잎을 엉성하게 엮은 지붕이나 흙으로 세운 벽은 바람도, 비도 막지 못했다. 어두컴컴하고 2㎡ 남짓 되는 작은 공간엔 할머니가 흙바닥 위로 이불만 깐 채 힘없이 누워있었다. 전 목사와 일행이 할 수 있는 건 약간의 도움 그리고 기도뿐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전 목사가 시파만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 기도 소리만 들렸다.

“종의 눈에 한없는 눈물이 흐른다”는 전 목사의 고백이 기도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팔순이 넘은 귀한 할머니의 건강과…” 할머니를 위한 축복의 기도를 하자 꼼짝도 하지 않던 할머니가 마치 한국말을 알아들은 듯 왼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전 목사와 일행이 그나마 안심하는 부분이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에스와티니는 복음화율이 60%다. 시파만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후원 아동 모두 교회를 다닌다. 시페실레는 ‘좋은 선물’, 시보니소는 ‘비전’이라는 뜻이다.

밖으로 나온 전 목사가 염소 한 마리를 아이에게 선물했다. 염소젖으로 영양을 섭취할 것이라 기대했다. 이 염소는 가양교회 성도들이 정성껏 모은 돈으로 샀다.

이 장로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남매를 대신해 물을 길어다 주자는 것이었다. 전날 이들은 인근 잔돈도 마을에 월드비전이 세워준 정수시설을 보고 왔다. 이 시설이 있기 전 주민들은 먹을 물을 뜨러 물룰루 강까지 왕복 두 시간을 걸었다. 시파만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시넷질레는 “건기 땐 한 시간 정도 걸어 강까지 가고 지금은 우기라 가까운 곳에서 물을 떠 온다”고 했다. 5분 거리라는 말에 안심하며 비탈을 내려가니 작은 웅덩이가 나왔다. 흙탕물이었다. 아니 폐수에 가까웠다. 나뭇잎과 흙은 물론 소, 염소 등 가축 배설물까지 떠다녔다. 한국의 낯선 이방인들이 안타까움에 신음을 내뱉을 때도 시파만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뭇가지로 장난을 쳤다. 다섯 살 아이의 천진함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시파만다 가족이 식수로 사용하는 집 근처 웅덩이의 더러운 물을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짓는 전 목사의 모습. 월드비전 제공

전 목사가 남매와 함께 ‘사마리 NO.2’ 교회를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시파만다와 누이는 이 교회 교인이다. 할머니도 건강할 때는 같이 교회에 다녔다. 전 목사는 이 교회 둠싸니 누말로(61) 목사에게 “시파만다를 보살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 장로는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달라”고 부탁했다.

쇼핑센터에 들러 아이들에게 급한 것부터 샀다. 먹을 것도 없었으니 아이들에겐 입는 것, 신는 게 사치였다. 쭈뼛대던 시파만다가 용기를 내 원하는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전 목사가 무릎을 꿇고 아이의 발에 새 신을 신기자 아이는 자연스럽게 목사의 뒤통수에 손을 대 몸을 기댔다. 오래전 알고 지내던 것처럼 전 목사를 의지했다. 신발이 마음에 드는지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누나는 자신의 옷보다 기저귀, 분유 등 아이 물건을 골랐다. 월드비전 직원들이 아이의 물건도 모두 살 수 있다고 안심시킨 뒤에야 자신의 신발을 골랐다.

작별 인사를 하는 시넷질레가 속내를 털어놨다. 어설픈 영어에도 그녀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오늘 너무 행복했어요. 너무 너무.”

그리고 20여일의 시간이 지났다. 시파만다를 대신해 누나가 쓴 편지가 월드비전을 통해 전 목사에게 전달됐다.

“먹을 게 없어 어려움이 많았는데 오늘은 따뜻하고 건강한 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나의 후원자님, 저희 가정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만지니(에스와티니)=글·사진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