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법 제각각 한·중·일 ‘통상 삼국지’… FTA까지 산넘어 산

입력 2019-12-26 04:04

한국과 중국, 일본이 최근 정상회의에서 3국 간 신속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노력키로 하면서 ‘동북아시아 경제공동체’ 탄생에 한 발 더 다가섰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세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넘는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는 세계 경제 2위 중국, 3위 일본과의 ‘통상 고속도로’ 연결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세 나라가 협상 착수 7년 만에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협정문 타결에 성공한 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중·일 FTA는 협상을 시작한 지 7년이 되도록 구체적인 진전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중·일 경제공동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2012년 11월 한·중·일 FTA 협상개시를 선언한 이후 세 나라의 협상팀이 서울과 도쿄, 베이징 등을 오가며 16차례나 협상을 벌였지만 타결 소식은 요원하기만 하다.

한·중·일 FTA가 바퀴를 굴리지 못하는 배경에는 치열하게 펼쳐지는 ‘통상 삼국지’가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동아시아 주도권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신경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등이 얽히고설켜 복잡한 방정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세 나라는 장기적으로 한·중·일 FTA가 필요하다는 데엔 공감대를 이뤘지만, 협상에 임하는 셈법은 제각각이다.


우선 한국은 한·중·일 FTA 타결 시 세계 3위의 지역 통합시장이 탄생한다는 데 주목한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한·중·일은 전 세계 GDP의 23%, 교역량의 18%를 차지했다. 중국과 일본이 한국의 제1, 제3 교역상대국이기 때문에 FTA를 맺으면 수많은 관세·비관세장벽이 사라지게 된다. 통상 고속도로를 타고 대중(對中), 대일(對日) 수출이 크게 늘 수 있다. 수출을 핵심 엔진으로 하는 한국 경제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정부가 2012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의뢰한 경제적 타당성 평가에서도 한·중·일 FTA 체결 10년 뒤 한국의 실질 GDP가 1.17~1.45% 증가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북핵, 역사 충돌 등으로 심심치 않게 긴장 관계에 놓이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에도 한·중·일 FTA가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동북아균형자론’을 내세웠던 참여정부 때부터 한국은 민관 공동연구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한·중·일 FTA ‘터 닦기’를 해왔다. 2013년 한·중·일 FTA 1차 협상이 서울에서 열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협상은 잘 굴러가지 않고 있다. 협상 초반에는 사회주의 국가인 동시에 낮은 수준의 시장개방을 원하는 중국과 한·일의 눈높이 차이가 큰 변수였다. 중국은 일본산 제조업 제품이 밀려들어 오는 데 난색을 표했고, 일본 역시 중국산 농산물 관세 인하에 미온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 등이 불거지면서 협상 동력은 떨어졌다. 최근 들어 일본이 농산물 시장의 개방 수준을 높이겠다고 제안하면서야 다시 속도를 내고 있는 형편이다. 제조업 분야 개방에 소극적이었던 중국도 개방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만 동북아 주도권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신경전이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RCEP 협상 초반에도 낮은 수위의 충돌과 갈등을 반복했다. 중국이 ‘한·중·일+아세안(ASEAN·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공동체 구상을 꺼내 들자 일본은 여기에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국가와 인도까지 포함하자고 역제안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RCEP 협정문 타결에 성공했지만, 중·일 모두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까지 겹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 포위망’ 구축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국가다. 중국은 한·중·일 FTA를 통해 이 포위망을 해소하고 싶어 한다. 이와 달리 일본은 중국이 참여하지 않는 자국 중심의 ‘포괄·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 나라 모두 FTA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를 극복하기까지 10~2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