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에 가려진 민생법안들… 개정 못하면 혼란 불가피

입력 2019-12-26 04:05
여야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사흘째 이어진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의원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정치권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혁안에 매몰된 나머지 국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법안은 외면하고 있다. 대체복무제를 규정한 ‘병역법 개정안’과 DNA로 신원확인 정보를 이용하는 ‘DNA법’은 헌법재판소(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다음 달 1일부터 법적 효력을 잃는다. 개정안이 올해 안으로 통과되지 못하면 입영 혼란이나 DNA 수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또한 지방세법·부가가치세법을 포함한 예산부수법안 20개는 여전히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한 채 ‘법률 공백’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5일 헌재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국회에서 개정돼야 할 법률은 23건에 달한다. 헌재는 법이 헌법에 어긋나지만 당장 효력을 정지시킬 경우 사회적 혼란이 예상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다.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해당 법률은 개정 시한까지 국회에서 입법이 이뤄져야 법률 공백을 피할 수 있다. 병역법·DNA법을 포함해 국회의사당이나 법원으로부터 100m 이내에서의 시위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수사기관이 통신사실 확인 자료를 확보할 근거가 되는 ‘통신비밀보호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대신해 의장석에 앉은 주승용 부의장이 피곤한 듯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 최종학 선임기자

특히 병역법의 경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해 8월 헌재가 현행 병역법 5조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 방안을 올해 말까지 마련하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법안이 연내 처리되지 못할 경우 다음 달 1일부터 신규 병역 판정 검사가 중단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개정안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병역 처분의 근거인 ‘병역의 종류’ 조항이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여야가 만든 병역법 개정안은 지난달 29일 본회의에 올라 의결만 남은 상황이었으나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해 법안 통과는 미뤄진 상태다.

세무사법도 뜨거운 감자다. 세무사법은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올해 말까지 국회에서 개정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무사 등록조항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 세무사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내년부터 세무 대리인의 세무조정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납세자는 법적 공백으로 소득세나 법인세를 낼 때 세액의 20%에 달하는 미신고 가산세를 추가로 내야 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도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에서 예산부수법안들의 통과가 지연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예산부수법안 처리가 계속 미뤄질 경우 예산 집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특히 특별회계와 기금 설치 관련 부수법안의 경우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기금 설치 자체가 어려워 예산 집행이 불가능해진다. 농업소득보전법과 소재·부품기업 특별법도 본회의를 넘지 못해 2조6000억원 규모의 공익형 직불제와 소재·부품·장비 특별회계 설치도 미뤄지고 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