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울진 산양’의 눈물… 한쪽선 종 복원 한창인데, 로드킬·아사

입력 2019-12-25 18:37 수정 2019-12-25 20:50
경북 울진의 한 산자락에서 지난 7월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어린 산양. 울진에는 1급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산양이 93마리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울진은 국립공원이 아니어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울진에선 2010년부터 10년간 57마리의 산양이 로드킬을 당하거나 굶어 죽었다. 녹색연합 제공

지난 5월 22일 경북 울진의 36번 국도에서 쓰러진 새끼 산양이 발견됐다. 인간을 꺼려 1년에 몇 번 볼 수도 없는 산양이지만 배고픔에 도망가지도 않고 웅크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울진군 공무원과 환경단체 회원들은 이 산양을 구조해 응급조치했지만 심각한 상황이었다. 현지에서 가장 가까운 강원도 인제에 있는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생물종보전원 북부복원센터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차량으로 무려 4시간 넘게 걸리는 이동거리. 배고픔과 큰 스트레스까지 받은 이 산양은 인제에 도착해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받았지만 1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죽었다.

사흘 전인 5월 19일 울진 백암산 신성계곡 등산로에선 굶어 죽은 산양이 등산객에 의해 발견됐다. 지난해 5월 6일엔 도로에서 산양이 로드킬을 당해 죽었다. 역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산 밑으로 내려오다 차에 치인 것이다. 2010년 겨울 폭설 때는 울진 산양 25마리가 먹이 부족으로 집단 떼죽음을 당했다.

산양은 천연기념물 217호이자 환경부가 지정한 1급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200만년 전 발견된 화석이 현재와 거의 비슷해 살아 있는 화석으로도 불린다. 환경부가 지난 9월 무려 37년을 끌어온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백지화시킨 이유 중 하나가 산양 서식지 보호였다. 당시 환경부는 “이 사업이 산양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번식에 장애가 된다”고 밝혔다.

산양은 반달가슴곰, 여우와 함께 국립공원공단이 종복원을 하고 있는 동물 3종 중 하나다. 11월 초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월악산에서 산양 종복원에 성공해 무려 100마리가 서식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산양은 올해 현재 설악산에 260마리, 월악산에 100마리, 울진에 93마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울진 산양만 배고픔과 로드킬, 올무에 걸려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2010년부터 최근까지 10년간 울진에서 로드킬을 당하거나 아사한 산양은 57마리다. 종복원에 성공한 월악산 산양 수의 절반 이상이다.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산양은 정부가 나서서 종복원에 심혈을 기울이는 반면 한쪽에선 관리 부족으로 죽어 나가는 역설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울진이 국립공원이 아니어서 그 일대에 서식하는 산양이 정작 보호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공단은 ‘울진 산양이 관리를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곳은 국립공원이 아니다”고 밝혔다. 똑같은 멸종위기 1급 산양인데 사는 지역에 따라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설악산과 월악산 등 국립공원 지역에선 ‘산양 보호구역’이 별도로 지정돼 있다. 민간인의 출입도 엄격히 제한된다. 정부가 설치한 감시카메라로 일일이 관찰된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월악산에서 산양이 로드킬을 당한 사례는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없다.

그런데 월악산과 비슷한 수의 산양이 살고 있는 울진 지역은 민간인뿐 아니라 사냥꾼까지 들어와 삶을 위협한다. 실제 울진은 지난 2월까지도 전국의 엽사가 총기와 수렵견을 통해 산양 사냥이 가능한 ‘순환수렵장’이었다. 이후부터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지를 위해 사냥이 금지됐지만, 돼지열병이 잠잠해지면 언제라도 사냥이 가능한 지역이다. 얼마 전부터는 울진에 야생멧돼지를 잡기 위해 20개의 포획틀이 새로 추가 설치됐다. 산양에겐 또 다른 공포의 대상이 등장한 셈이다.

관리·보호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산양 서식 조사도 마찬가지다. 울진 지역은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시민 모금과 기업 후원으로 2011년부터 50여대의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민간 차원에서 조사가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울진 산양은 다쳐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산양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인제 설악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생물종보전원 북부복원센터에만 있기 때문이다. 울진에서 그곳까지는 차량으로 4시간 넘게 걸린다. 소나 양은 수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로 수송열(shipping fever)이라는 질환에 걸리기 쉽다. 폐쇄된 환경과 스트레스 탓에 면역력은 떨어지고 이로 인해 폐렴과 패혈증이 생겨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10년간 탈진 상태로 발견된 울진 산양 17마리 중 이동하다 죽은 개체가 13마리에 달했다.


정작 인근 지역인 경북 영양에는 환경부가 지난해 10월 총 764억원의 국비를 투입해 설립한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있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지만 이곳에선 산양을 다루지 않는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기존에 종복원을 하고 있는 동물들은 강원도 인제 국립공원공단에서, 나머지 멸종위기종 치료는 영양의 멸종위기 종복원센터에서 치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멸종위기종 복원을 하는 곳이지만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아니라 상급기관이 어디냐에 따라 관리 종을 따로 나눈 셈이다. 종복원센터 설립 목표가 ‘국가 멸종위기종 보전정책 수립 및 운영 중심기관’이라는 점이 무색하다.

경북 울진에서 지난 5월 22일 탈진해 쓰러진 채 발견된 아기 산양이 강원도 인제 국립공원공단 종복원기술원 북부복원센터의 동물용 인큐베이터 안에 힘없이 앉아 있다. 이 산양은 치료를 받았지만 1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국립공원공단 제공

울진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이 지역에 구조치료센터라도 만들어 달라고 환경부에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산양이 100마리 가까이 사는 만큼 수의사가 상시 대기하는 곳이 있으면 긴급 치료라도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문화재청과 울진군은 지속적인 협의 과정을 거쳐 지난 2016년 4월 정책 간담회를 통해 울진 산양구조·치료센터 건립과 운영 방안을 협의하고,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운영비 부담 주체를 놓고 샅바 싸움이 이어지자 결국 울진군은 치료센터 건립을 반납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립공원공단의 산양 등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에 총 368억원이 투입됐다. 올해 예산도 44억원가량이다. 하지만 울진 산양을 위한 예산은 한 푼도 없다. 정부가 종복원에만 신경 쓰지 말고 막대한 예산 중 일부를 국립공원 외부에 있는 산양 보호에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제선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25일 “멸종위기 1급인 산양이 자생지가 관리되지 않아 죽어가는 마당에 종복원은 무의미하다”며 “종복원에 들어가는 예산 일부만 있어도 울진 산양은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 3월 ‘울진·삼척 지역 산양 개체수 조사 및 관리 방안 수립’ 회의를 열었다. 이후 지난 10일 울진 산양 관리 대책 마련을 위한 보고회를 가졌다. 환경부는 이 보고회에서 울진 산양을 구조할 경우 인근 영양에 있는 멸종위기종복원센터로 이송해 치료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아직 대책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환경부가 관계기관과 협의해 울진·삼척 지역 산양 보호에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