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 라디오 방송이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올해로 입사 8년 차인 유영선 한은 금융결제국 과장. 그는 아직도 출근할 때마다 오늘도 잘 해낼 수 있을까 긴장한다면서 “그건 아마 좋은 의미의 긴장일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유 과장은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했다. “현대인들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불안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았으면 좋겠다. 주말엔 파란 하늘 보며 여유를 만끽하자는 의미에서 노래를 선곡했다.” 뒤이어 ‘약해지지 마. 슬픔을 혼자 안고 살지는 마’라는 노랫말이 건물을 메웠다. 가수 정은지의 ‘하늘바라기’라는 곡이었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가 강한 한은이 파격을 시도 중이다. 2030세대 직원들이 DJ로 변신해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가 하면, 간부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은이 사내 라디오 방송을 하기는 처음이다. 평소 외부 변화에 둔감하고 소통에 소극적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한 움직임이다.
지난 10월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한은 본관에 울려 퍼지는 라디오 방송은 호평을 받고 있다. 이주열 총재도 애청자다. 젊은 직원들이 교대로 마이크를 잡으면서 톡톡 튄다.
정일동 한은 비서실장은 “총재실에도 방송이 된다. 이 총재가 처음에는 다소 놀라워했지만, 이후에는 일부러 끝까지 방송을 듣고 퇴근할 정도로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청년이사회’도 한은의 분위기를 녹이고 있다. 2006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올해로 13기를 맞은 청년이사회는 2030세대 11명으로 이뤄졌다. 매월 한 번 회의를 열고 젊은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듣는다. 지난 10월엔 부서별로 분기마다 진행하는 ‘목표성과분석회의’에도 참석했다.
‘젊은 피’ 활약은 올해 유독 빛났다. 한은은 지난달 21일 ‘전략2030 태스크포스(TF)’에 밀레니얼 분과를 꾸렸다. 창립 70주년인 내년에 미래 비전을 제시할 계획인데, 젊은 직원들 생각을 담겠다는 의도다. 밀레니얼 분과는 ‘확대간부회의’에도 참석했었다.
정삼선 한은 경영전략팀 팀장은 “총재 이하 각 부서장급이 모인 간부회의에 젊은 직원들이 함께하기는 올해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의 파격 이면에는 ‘소통’을 갈망하는 이 총재의 고민도 깔려 있다. 이 총재는 후보자 시절부터 소통을 늘려 한은의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한은 관계자는 25일 “내부 세대 간 소통을 바탕으로 외부 소통에도 긍정적 변화를 이끌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