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생전 예술가로서 높이 평가받지 못하면서 그가 그린 그림들은 철저히 외면받았다. 팔린 작품은 단 한 점에 불과했다. 가난, 외로움이 늘 그와 함께였다.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비참했다.
26일 개봉한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감독 줄리언 슈나벨·사진)는 ‘인간 고흐’가 마지막까지 붙잡았던 예술혼과 열정을 조명한다. 영화는 고흐가 1888년 프랑스 남부 아를에 머물며 동료 폴 고갱(1848~1903)과 교류하던 시기부터 1890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죽음을 맞이한 순간까지 차분히 따라간다. 고흐의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는 대사들이 간단없이 이어지는데, 특히 극 후반부 의사와 나누는 대화가 인상 깊다.
“예전에는 예술가란 세상 보는 법을 가르쳐줘야 된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나와 영원의 관계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영원이라 함은?” “다가올 시간이요.” “그 얘긴 곧 당신이 세상에 줄 선물이 그림이란 거군요.” “그렇지 않다면 예술가가 있어 뭣하겠어요.”
정신없이 흔들리며 시시각각 시점과 구도가 바뀌는 카메라 앵글은 고흐의 불안정한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중반 이후부터 화면 절반이 뿌옇게 나오고 대사에는 에코가 들어가며 두 가지 화면이 중첩되기도 하는데, 이는 점차 파괴돼가는 고흐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장치로 보인다.
실제 고흐가 머물렀던 장소에서 담아낸 풍경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고갱 역의 오스카 아이삭, 신부 역의 매즈 미켈슨 등 배우들의 호연이 작품을 한층 살아 숨쉬게 만든다. 특히 고흐를 연기한 윌렘 대포는 압도적이다. 이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