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균·임경섭의 같이 읽는 마음] 농경이 인류를 정착하게 만들었다고?

입력 2019-12-28 04:04
농경 생활이 덕분에 인류가 정착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농경의 배신’은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저자는 농경이 정착 사회의 선행 조건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픽사베이

지구의 환경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 논의되기 시작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각 자치단체와 국가는 환경오염에 대해 고민하면서 저마다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오염 문제는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30년 동안 매년 해수면이 3㎝가량 오르고 그 상승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어린 시절만 해도 분명하게 존재했던 사계절 역시 이젠 모호한 구분이 되어버린 듯하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미세먼지와의 전쟁에 이제 이골이 났는지 가끔 만나는 쾌청하고 새파란 하늘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최근 한국 정부는 지속 가능한 저탄소 녹색 사회 구현을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 대비 약 24%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이 확정됐다. 계획에 포함된 주요 과제는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 기후변화 적응체계 구축, 기후변화 대응 기반 강화 등 세 가지다. 이 중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환경부는 전환(전력·열), 산업, 건물, 수송, 폐기물, 공공, 농·축산, 산림 등 8대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난 8월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메탄과 이산화질소 배출의 주요 원인은 농업과 축산업이었다. 특히 축산업을 통한 메탄 배출량은 1961년 이래 약 1.7배 증가했다. 메탄은 100년간의 온난화 영향도가 이산화탄소보다 32배나 높은 강력한 온실가스다. 메탄 배출의 주요 원인으로는 축산업을 들 수 있다. 축산업은 전 세계 메탄 배출량의 33%, 농업 분야로 한정 지었을 때 배출되는 양의 66%를 차지한다. 이처럼 농·축산 분야는 온실가스에 의한 환경오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내뿜는 배기가스뿐 아니라 가축분뇨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 역시 지구 환경오염의 주범이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는 농경을 시작함으로써 인류가 마침내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촌락과 도시, 국가를 이루었고, 그로써 문명과 법과 질서를 확립해 안정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예일대 교수 제임스 C. 스콧의 ‘농경의 배신’은 그 믿음에 대해 도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개인의 주장이 아닌, 고고학과 역사학의 실제 증거들이 이러한 서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최초의 농경 국가들은 ‘길들이기(domestication)’ 과정의 축적을 통해 탄생했다. 처음에는 불, 그다음에는 식물과 가축, 그리고 국민과 포로, 마지막으로 가부장제 가정 안에서의 여성이 타깃이 됐다. 이러한 길들이기 과정은 결국 번식력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는 과정이었다.

고대사 인류학 선사학 고고학 생물학 역학 인구학 환경학 등 스콧 교수의 방대한 최신 연구 성과들을 따라가다 보면, 현생 인류의 기준점이라 할 수 있는 농경,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한 문명과 국가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하게 된다. 그의 깊이 있는 성찰은, 우리가 아주 단순하게 바라보고 있는 현 인류의 문제점들이 세세하고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려준다. 환경 문제와 젠더 문제처럼 우리가 외따로 골똘하고 있는 문제들이 하나의 지점으로 연결되는 서사를 확인하게 된다.

인간은 전례 없이 집중화된 공동체 안에 살고 있다. 이렇게 북적거리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 생태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인간은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찰나의 시간을 살아왔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지구를 상당 부분 망가뜨렸다. 이제 진정 돌아보고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임경섭·출판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