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히 살고 싶은 마음, 오늘 뿐이랴
전깃줄 참새들이 가지런히 앉아 있듯이
옥상 빨래가 가지런히 널려 있듯이
가지런히 새해를 맞고 싶다
걷는 길이 요철이 심하고
겨울바람은 몸을 가누게 하는데
오르막 골목길을 돌아 나오다
흙먼지가 목덜미로 들어가도 어쩌겠는가
현관문을 열고 수고한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정갈하게 살고 싶은 마음, 오늘 뿐이랴
수락계곡 갈물이 정갈하게 흘러가듯이
단골집 밑반찬이 정갈하게 놓여 있듯이
정갈하게 새해를 맞고 싶다
뉴스는 맑아질 일 없고
책꽂이엔 먼지만 쌓일 테고
내리막 골목길을 돌아 나오다
흙탕물을 뒤집어써도 어쩌겠는가
저녁 먹고 편히 쉴 방을
정갈하게 닦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뒤를 보아야 앞으로 나갈 수 있거든
잔설을 덮고 아지랑이 자고 있음을 믿고 있거든
새해는 좀 더 가지런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맞을 수밖에
전민호의 ‘아득하다, 그대 눈썹’ 중
오늘이 어제처럼 힘들었듯 내일도 오늘처럼 고될 게 자명한데도 새해맞이를 앞둔 요즘 같은 때에는 “가지런히” “정갈하게” 새해를 마주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곤 한다. 시를 읽으면 시인의 이런 당부를 느낄 수 있다. 새해엔 오르막을 오르다가 흙먼지를, 내리막을 걷다가 흙탕물을 뒤집어써도 마음만큼은 정갈하고 가지런하게 다잡으며 살아가자고. 우리에겐 그래도 수고한 신발을 놔둘 수 있는 현관문이 있고, 저녁 먹고 편히 쉴 방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