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초유의 ‘맞짱’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이어갔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소수당이 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거대 양당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소모적 공방으로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당과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이틀째인 24일에도 번갈아가며 의사진행 방해에 나섰다. 새벽이 되자 지루한 듯 엎드려 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 등 딴짓을 하는 의원이 속출했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의장석에 앉아 잠시 졸았다.
생리현상을 두고 논쟁이 오가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하던 중 화장실 이용을 요청했고, 문 의장이 허가하자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는 자리를 비우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아침이 밝아오면서 본회의장은 모욕적 언사와 고성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오전 6시20분쯤 단상에 선 권성동 한국당 의원은 “조폭 건달 도둑 장물아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뜯어먹겠다고 하는 꼬라지”라고 말했다. 이에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갑자기 일어나 “말씀은 가려서 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은 다음 달 중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초단기 임시국회를 열어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여당의 전략대로라면 최대 일곱 번의 임시국회가 열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상정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25일 회기 종료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수 있는데, 다음 회기 시작일인 26일에 자동으로 선거법이 표결에 부쳐진다. 나머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 6개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서도 이런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한국당은 모든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결국 임시국회(법안 상정 및 필리버스터) 개회 후 2~3일 후 종료, 이후 새 임시국회를 열어 필리버스터 법안 표결 및 새 법안 상정을 하는 방식으로 의사일정이 반복되면 1월 중순에는 모든 법안이 표결에 부쳐지게 된다.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 합의로 의결정족수(재적 295명 중 148명)는 무난히 채워 법안들은 대부분 통과될 전망이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법안 처리를 최대한 지연시키겠다는 셈법이지만 표결에 부쳐지면 저지할 방법은 없다. 패스트트랙 법안 논의에서 배제된 데다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법안이 통과되는 모양새라 사실상 한국당이 ‘완패’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당은 민주당의 쪼개기 국회 전략을 허가한 문 의장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형사고발하고,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과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출키로 했다.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이가현 심희정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