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환경주의 투사’를 자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위한 유세에서 잇따라 기후변화 대응 움직임을 폄훼하며 전방위적 비판을 가하고 있다. “기후변화 담론은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라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유권자들에게 기후변화 투쟁이 야기하는 일상의 불편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약속하며 반녹색 메시지를 핵심 공약으로 들고나온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1일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보수 성향 학생단체 행사 ‘터닝포인트 USA’에 참석해 “풍력발전기가 많은 대머리 독수리를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친환경 에너지 발전에 대해 회의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풍력발전은 매연을 뿜어내고 발전기 아래쪽은 새들의 무덤이 된다. 발전기가 돌아가며 만들어내는 소음은 암을 유발한다”며 음모론을 펼쳤다. 그러면서 “풍력발전기는 매우 비싸다. 중국과 독일에서 주로 만들어지고 미국에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풍력발전이 다른 나라의 이익만 불린다고 공격한 것이다.
지구온난화 현상 자체를 부정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풍력발전에 적대감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스코틀랜드에 있는 자신의 골프 리조트 인근에 풍력발전소가 들어서자 이를 막기 위해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풍력발전소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환경주의 투쟁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같은 슬로건에 담긴 과거에 대한 향수와 결합돼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에너지효율이 높은 가전제품, 탄소 저감 연료 기준,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등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친환경 소비 이슈에 대한 공격으로 구체화되며 유권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지지층에게 트럼프의 주장은 환경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한편 ‘일상적 자유에 대한 정부의 침해’라는 문제를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선 캠프는 지난여름 ‘편하고 좋은 플라스틱 빨대를 왜 축출하느냐’는 논리를 펴며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새긴 빨간색 빨대를 판매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선거자금을 모으는 수단으로 반환경 메시지를 이용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에는 물 낭비를 막기 위해 고안된 저수류 변기와 관련해 “결과적으로 미국인들은 화장실에서 일을 본 뒤 10번, 15번 물을 내리는 불편을 겪고 있다”며 에너지 정책법을 손보겠다고 공언했다.
미 에너지부는 지난 20일 백열전구를 시장에서 축출하지 않고 내년 1월 1일부터 다시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백열전구 퇴출 정책을 백지화한 것이다. 백열전구는 저효율 에너지 전구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백악관 공식 트위터에는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인들이 값비싼 LED 전구로 집을 꾸미도록 노력했지만 이제 트럼프 대통령 덕에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전구로 집을 장식할 수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나간 시대를 추구하는 자신의 공약이 민주당의 ‘그린 뉴딜’ 정책(환경보호·재생에너지 정책)에 지쳐버린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는 만큼 ‘녹색 대 반녹색’ 구도가 미 대선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