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 확대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데 필요할 경우 파운드리 사업부를 별도 자회사로 분리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파운드리 사업부 분리설이 힘을 얻는 것은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시스템LSI와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는 퀄컴, 엔비디아 등 반도체 설계만 하는 팹리스 업체들의 설계를 가져다 생산만 한다. 그런데 고객사 입장에서는 파운드리를 하는 삼성전자가 시스템LSI에서 ‘엑시노스’라는 브랜드로 직접 반도체를 설계해서 만들다 보니 자신의 비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만드는 엑시노스는 스마트폰과 차량용 그리고 통신용 모뎀 등이다. 스마트폰에선 퀄컴 스냅드래곤, 애플 A시리즈 등에 이어 시장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로선 점유율이 높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몇몇 업체들이 삼성전자가 칩 디자인의 노하우를 배우거나 베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기는 걸 우려한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렌드포스 분석가 크리스 수는 “삼성전자는 시스템LSI가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의심을 없앨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1위를 위해선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모두 지금보다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파운드리를 분리하는 문제를 논의할 때는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는 전혀 검토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 파운드리 경쟁은 7나노 이하 초미세공정으로 진입하면서 대만 TSMC와 삼성전자 2강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퀄컴, 애플 등 대형 고객을 잡고 있는 TSMC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IT 공룡들이 자체 칩셋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파운드리 시장이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구글은 텐서프로세싱유닛(TPU), 아마존은 그래비톤을 직접 설계하고 있다. 애플도 A시리즈를 직접 만들고 있고, 페이스북도 자체 칩셋 개발을 위해 인력을 모으고 있다. 특히 구글이나 아마존의 경우 자신들의 주력 사업 분야인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사업을 위해 칩셋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IT 공룡들은 설계 능력은 있지만 이를 만들 대규모 설비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삼성전자가 TSMC와 5나노, 3나노 미세공정 개발 속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장 불안을 불식시키고 기술력을 인정받는다면 삼성전자가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바이두의 AI 반도체 ‘쿤룬(KUNLUN)’을 수주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