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자선단체들이 활발히 모금활동에 나섰지만 기부의 손길은 갈수록 뜸해지고 있다. 겨울철 자선모금 단체의 대명사 격인 구세군 자선냄비는 올해 냄비 개수 자체가 크게 줄었다. 기부자 수는 줄고 기업기부 비중이 커지는 ‘기부 양극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탈락 경쟁’에 대한 공포가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기부문화가 활성화되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24일 구세군에 따르면 전날까지 구세군의 자선냄비 거리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 정도 줄었다. 거리 모금액은 2016년 말 촛불시위 등 대규모 집회 등 이유로 소폭 올랐던 걸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근 10년 새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구세군 관계자는 “자선냄비 수를 지난해 443개에서 올해 353개로 줄였다”면서 “줄어든 자선냄비 수에 비하면 모금액이 크게 내려간 건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계속 줄어드는 추세는 맞다”고 말했다.
24일 기준으로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계 온도는 46.4도다. 사랑의 온도계는 기부액에 따라 수치가 오른다. 23일 36.4도에서 하루 만에 10도 올랐지만 이는 기업 기부를 모두 포함한 수치다. 이날 기준으로 개인 기부자는 50만1753명으로 지난해 65만8441명에서 15만명 넘게 줄었다. 사랑의 온도계를 운영하는 사회복지공동기금 관계자는 “사실 온도가 오른 것은 개인 기부문화 측면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며 “연말에 기업 기부가 쏠리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일선 봉사자들은 한국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기부마저 양극화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복지공동기금 관계자는 “기부자 수가 줄어드는 대신 거액 기부자가 늘어나는 것이어서 기부문화가 활성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구세군 관계자도 “거액 기부자가 많아지는 추세”라면서 “거액 기부자 대부분은 부유층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일상에서 꾸준히 기부금을 모아오신 분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10년 넘게 기부문화가 위축되는 배경에는 갈수록 심해지는 개인주의 등 사회 분위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복지공동기금 이사를 맡고 있는 황창순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업 기부의 경우 조세제도를 개편해 촉진시킬 수 있지만 개인 모금의 경우 세제를 개편한다고 해서 영향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구세군 통계에서도 기업 기부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황 교수는 “개인의 재산 증식이 구성원들의 제일가는 관심사가 된 사회에서 이웃을 돕지 않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효민 구세군 자선냄비본부 모금실장은 “사회가 각박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변화”라면서도 “하지만 자선냄비를 유지하는 건 이웃돕기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상징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