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정상회담, 근본적 해결로 이어지려면

입력 2019-12-25 04:02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했다. 15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마주 앉았다. 지난달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대화하기 위해 팔을 잡아끌어야 했을 만큼 양국은 소원했다. 청와대의 평가처럼 회담 개최 자체를 진전이라 부를 만했다. 이 회담을 위해 양국은 조금씩 양보했다. 한국은 지소미아(GSOMIA) 종료를 유보했고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일부 철회했다. 양측 다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국과 일본은 이런 관계다. 서로 경계하고 경쟁하지만 마냥 그럴 수 없는 수많은 연결고리에 묶여 있다. 그 연결고리만 생각하면 누구보다 가까워질 법도 한데 마냥 그럴 수 없는 과거의 걸림돌이 여전히 커다란 존재감을 갖고 있다.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양국의 모든 역대 정권이 천명했듯이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는 게 양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이를 위해 걸림돌을 낮추고 제어하는 일은 정치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두 정상의 만남은 한동안 표류했던 이 작업을 재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시작에 불과하지만 시작이 반이기도 하다.

한·일 관계 경색의 원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일본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갖다 붙였지만 결국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단초였다. 이는 한국 산업의 동맥인 반도체 소재 수급 문제를 촉발했고, 우리 정부와 기업이 일본의 수출 규제를 훌륭하게 방어해 일본도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아직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시점에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됐다는 점에 이 사태의 절묘함이 있다. 이를 놓쳐선 안 된다. 놓치는 쪽이 패자가 될 것이다.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정상화와 상생 발전을 위한 궤도의 초입에 들어섰다. 갈 길이 멀지만 가야 할 길이라면 피할 수 없고, 어떻게 가야 할지 방법도 제시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시한 징용 해법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관건은 관련된 이들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일 테다. 박근혜정부의 위안부 해법처럼 불행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언젠가 풀어야 할 문제라면 지금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것을 해내는 것도 능력이다. 이 정부가 그런 능력을 갖췄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