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대한 추억이 많은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다녔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성가대회와 연극제에 참여했던 일, 성탄절 전날 밤을 꼬박 새운 후 새벽에 골목길을 돌며 성가를 불렀던 경험이다. 12월의 중반부가 넘어서면 언제나 성탄 행사 준비로 들떴다. 지역별로 성탄절 전날 열리는 합창대회 준비도 그중 하나였다. 매일 저녁, 자율학습을 끝내자마자 성당으로 달려가 성가 연습을 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는 성탄절 연극에도 참여했다. 나의 역할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대사는 딱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를 하는 것도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연습할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목소리가 높거나 부자연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성탄절을 기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성당에서 친구들과 밤새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탄절 전야는 공식적으로 밤을 새워도 되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성당에서 밤새 있다가 새벽에 교인들의 집 앞을 다니며 성가를 불렀다. 문을 열고 나와서 먹을 것을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돌아와 성탄 오전 예배를 마친 후 그때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처럼 성탄이라고 선물이 머리맡에 놓이는 일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성탄절 전날부터 당일까지의 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즐겁던 시절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맞이하는 성탄절은 어릴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는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라는 시가 실려 있었다. 화자가 어려 열에 시달리던 어느 날 밤, 아버지는 눈을 헤치시고 산수유 열매를 구해 오셨다. 이제 나도 아버지만큼의 나이를 먹게 되었고 성탄절에 내리는 눈을 보며 그때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는 시였다. 아버지와 같은 나이였다는 ‘서러운 서른 살’이라는 구절이 특히 좋았다. 어느덧 ‘서러운 서른 살’은 훌쩍 넘어갔고, 어른이 되면서 생겨난 여러 책임감은 한없이 커지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삶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로 인해 절망하고 낙담하는 날도 많아진다. 사랑을 실천하러 온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의 이 아침, 힘들고 지친 모든 이들에게 오늘만은 은혜와 축복이 흐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화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