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제주도 괸당, 그 유별난 관계

입력 2019-12-28 04:04

50대 제주도 토박이 남자에게 물었다. 괸당의 범위가 어디까지냐고. 그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바로 답했다. 제사를 같이 지내는 친척이라고. 그러면 요즘 제사에 오는 친척이 어디까지냐고 물으니 6촌까지는 온다고 했다. 다른 토박이는 4촌까지 모인다고 했다. 과거에는 그보다 더 먼 친척까지 제사를 함께 지냈다고 한다. 직장을 찾아 육지로 가거나 제주시, 서귀포시 등 도시 직장으로 가는 젊은이가 늘면서 괸당의 관계는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아직도 괸당의 일이라면 열일을 제치고 찾아온다.

친지의 경조사라면 보통 하루 다녀오면 되지만 괸당의 경조사는 적어도 사흘은 함께 지낸다. 첫날 돼지를 잡고 차일을 친다. 둘째 날 음식을 만들고 셋째 날 손님을 접대한다. 그동안 남자고 여자고 가리지 않고 모여 각자의 위치와 능력에 따라 할 일을 한다. 낚시로 튼실한 고기를 낚으면 며칠 있으면 아무개네 제사니 상에 올리라고 갖다 주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함께 힘을 모아 헤쳐 나가는 매우 강한 사회적 관계, 따뜻한 유대다.

괸당은 조상 묘 벌초를 함께 해야 한다. 음력 8월 초하루는 8촌 이내 친척이 모여 선대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한다. 괸당의 의무다. 학교는 벌초 방학을 하고 육지에 나간 사람도 이날은 온다. 제주도 크고 작은 도로에 벌초 행렬로 일 년 중 유일하게 체증 현상이 나타나고 온 동네 식당은 벌초에 참가한 괸당들의 예약으로 붐빈다. 모둠벌초라고 부른다.

괸당이 경조사에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같은 마을에 살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마을에서 떠나는 일이 별로 없어 혈연관계인 괸당은 항상 가까이 산다. 제주도에는 아직도 씨족사회의 거주 구조, 집성촌이 흔들리지 않고 존재한다. 섬이라는 폐쇄적 조건과 이렇다 할 기업이 발달하지 않아 직장 때문에 이주할 일이 적은 것이 집성촌이 아직 존재하는 이유일 수 있다. 오죽하면 자기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 다른 마을에 가면서 외방에 간다고 한다. 이들에게 외방은 불편한 곳이다. 괸당문화는 집성촌 구조와 절대적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제주도는 이장을 선거로 선출한다. 리 단위 사업을 제안해 예산을 확보하고 그 사업을 시행하는 막강한 자리다. 그런데 집성촌의 유대가 강한 곳에서는 집성촌 집안 후보가 나와야 선출된다. 제주시 구좌읍 중산간 마을 송당리의 경우 김씨와 고씨 집성촌인데 1949년 초대 이장부터 현재 37대 이장까지 김씨가 21차례, 고씨가 9차례, 홍씨가 6차례 나눠 했고 그밖에 타성은 이씨가 딱 한 번 선출됐다. 투표 기준은 철저히 괸당이다.

괸당은 다른 괸당과 엮여 새끼를 치고 외연이 확대된다. 한 사업가가 거래처에 물건 값을 묻는 전화소리를 들었다. 거래처 사람은 얼마라고 대답한 뒤 물건 살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 사업가는 괸당이야 라고 답했다. 거래처 사람은 그렇다면 얼마야 라고 금세 가격이 낮아졌다. 괸당끼리의 거래는 말할 것도 없고 새끼 친 괸당도 중요한 관계가 된다. 이런 현상은 제주도 각종 선거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제주도 괸당은 정당보다 강하다.

이주민이나 외지 사람들은 괸당이라는 그 유별난 결속력에 폐쇄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집성촌과 씨족사회 구조를 모태로 발전한 괸당문화는 서로 돕고 의지하며 지금까지 제주도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힘의 원천이었다.

박두호(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