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석 점거하며 “날강도” 고성… 예견된 ‘국회 막장 드라마’

입력 2019-12-24 04:06
문희상(오른편 단상 위)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회기 결정 안건을 상정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장석 주변을 에워싸고 항의하고 있다. 이후 문 의장은 예산부수법안 2건을 처리한 뒤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전격 상정했다. 그러자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에 반대하는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돌입했다. 연합뉴스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쓴 20대 국회가 또다시 막말과 고성으로 얼룩졌다. 국회선진화법의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회의장석에 올라가 의사진행을 방해했고, 본회의장은 한국당 의원들의 팻말 시위와 규탄 구호로 가득 찼다. 더불어민주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논의 과정에서 한국당을 배제한 만큼 예견된 파행이었지만, 누구도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가 23일 극적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검찰 개혁 법안에 최종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회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당초 예정 시간에서 1시간을 넘겨 오후 8시쯤 가까스로 열린 본회의는 제대로 된 소통이 불가능할 만큼 여야 의원들의 고성이 오갔다. 예산부수법안이 처리되는 도중 급작스럽게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의사일정 변경 표결을 통해 상정됐고, 오후 9시50분부터 한국당이 신청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시작됐다. 한국당은 첫 주자로 주호영 의원을 내세웠다.

문희상 의장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하자 한국당은 주호영 의원을 첫 주자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시작했다. 연합뉴스

한국당은 앞서 회기 결정 안건 처리부터 필리버스터를 신청했지만 문희상 의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회법상 무제한 토론 조항은 회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회기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제한 토론을 하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 의원은 회기 결정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마이크가 꺼지면서 토론을 이어가지 못했다.

한국당은 “무제한 토론을 보장하라”고 외치며 본회의 진행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의장석 앞으로 몰려들어 ‘아빠찬스 아웃(OUT)’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집단으로 항의했다. 본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한국당 의원들은 “아들 공천에 국회를 팔아먹었다. 역사의 죄인이자 날강도”라며 문 의장을 맹비난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의장석을 점거하는 한국당 의원들을 제지했다.

국회 본회의가 열린 23일 자유한국당 박대출(왼쪽 두 번째) 의원 등이 ‘아빠 찬스 아웃(OUT)’ 피켓을 들고 항의하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귀를 막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향해 “원천 무효”를 외치는 동안 일부 예산부수법안이 통과됐다. 예산부수법안은 예산안 처리 기한을 넘긴 만큼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수 없어 본회의가 열리면 곧바로 표결에 부칠 수 있다. 이에 한국당은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기 위해 무더기 수정안을 제출했다. 수정안은 해당 안건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까지 제출할 수 있는데, 한국당은 본회의 도중에도 수정안을 내며 의사진행을 지연시켰다. 하지만 수적 열세로 과반수 의결이 필요한 법안 통과까지는 막지 못했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은 임시국회 회기가 끝난 뒤 다음 임시국회 때 곧바로 표결에 부칠 수 있다는 국회법을 활용해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날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표결에 참여해 임시국회 회기는 25일로 종료되는 것으로 의결됐다. 내년 1월 중에는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과반수 의결로 계류된 법안들을 대부분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속한 처리를 당부한 민생법안은 연내 처리가 요원해졌다. 유치원 3법과 국회법 개정안,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제 도입 관련 법, 청년 정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한 청년기본법 제정안, 각종 연금법 등 200건이 계류된 상태다.

심희정 신재희 김용현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