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가(家) ‘남매의 난’이 시작될 조짐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동생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향해 “선대 회장의 유훈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비난했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외부세력’과 연대를 통한 남매간 경영권 분쟁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조 전 부사장은 23일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원을 통해 낸 ‘한진그룹의 현 상황에 대한 조현아의 입장’이라는 자료를 통해 “조원태 대표이사가 공동 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 왔고, 지금도 가족 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또 “상속인 간의 실질적인 합의나 충분한 논의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이 지정됐고, 조 전 부사장의 복귀 등에 대해 조 전 부사장과의 사이에 어떠한 합의도 없었음에도 대외적으로는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공표됐다”면서 “조 전 부사장과 법률대리인의 거듭된 요청에도 최소한의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경영상의 중요 사항이 결정되고 발표됐다”고 주장했다.
조 전 부사장 측의 갑작스러운 선전포고에 한진그룹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룹 측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조양호 회장 작고 이후 한진그룹 경영진과 임직원들은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국민과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한편,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주주 및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것이 곧 고 조양호 회장의 간절한 소망이자 유훈이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그룹이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변화의 기초를 마련하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서 이번 논란으로 회사 경영의 안정을 해치고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내년 3월 그룹 경영권이 달린 한진칼 주총을 앞두고 자신의 경영 복귀에 반대한 동생에게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고 조 전 부사장이 밝힌 점을 주목하고 있다. 현재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이 보유한 한진칼 보통주 지분은 각각 6.52%와 6.49%다. 조현민 전무와 이명희 전 이사장은 각각 6.47%와 5.31%를 보유하고 있다.
공교롭게 이날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한진칼 지분 1.31%를 추가로 매입해 지분율을 15.98%에서 17.29%로 늘렸다고 공시하면서 ‘한진가 남매’의 경영권 분쟁에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한때 KCGI의 경우 한진칼 경영권 장악을 노렸으나 델타항공 등 가세로 한진가에 승기를 뺏겼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조 회장이 수습하지 못할 경우 공동 경영 등을 조건으로 조 전 부사장과 연대를 모색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한진그룹은 2002년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승계 과정에서 ‘형제의 난’을 치렀다. 첫째인 고 조양호 회장과 둘째 조남호 전 한진중공업 회장, 셋째 고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넷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유산배분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유언장 조작 논란을 비롯해 각종 고소·고발을 이어갔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