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능후] 한·중·일, 상생의 길을 걷다

입력 2019-12-24 04:06

지난 14~15일 서울에서 제12차 한·중·일 보건장관회의가 개최됐다. 2007년 신종플루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우리나라의 제안으로 시작된 회의가 벌써 12번째를 맞았다. 올해에는 마샤오웨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장관, 가토 가쓰노부 일본 후생노동성 장관, 다케시 가사이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사무소 사무처장이 참석해 3국의 보건의료정책과 경험을 공유하고, 서태평양 보건 수준 향상을 위한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그간 10여 차례 보건장관회의를 통해 3국은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고 각국의 정책 여건과 과제가 유사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신종플루 공동대응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신·변종 감염병과 검역 분야로 꾸준히 협력을 확대해 이번 회의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한 보편적 의료보장 달성, 감염병 예방·대응, 건강하고 활동적인 고령화까지 다루게 됐다.

우선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정보통신기술에 기반을 둔 의료시스템에 대한 각국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보편적 의료보장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14일에는 3국 장관 및 대표단을 강원도 원주의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초대해 한국의 건강보험이 ICT 활용과 이를 통해 축적된 빅데이터로 국민건강 증진과 의료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을 소개했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의료정보 보안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아울러 신·변종 감염병 대응이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한 3국의 공통 과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국가 간 신속한 정보 공유, 공중보건위협 감시 및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를 도모했다. 중국은 사스, 동물인플루엔자, 신종플루를 겪어오면서 축적된 감염병 대응 관련 투자와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건강하고 활동적인 고령화’가 지속가능한 성장의 선제조건임을 이해하고 고령 인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가장 먼저 저출산·고령화에 대처해 온 만큼 2005년 이후 소폭 반등하고 있는 출산율과 그간의 노력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또한 3국은 24일 중국 청두에서 개최되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건강하고 활동적인 고령화 공동선언문’을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흔히 한·중·일 삼국지라는 관용적 표현을 쓸 정도로 각국은 지리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매우 가깝다. 그만큼 여러 영역에 걸쳐 협력해야 할 공동의 이슈가 있는 반면 이해관계가 선명히 나뉘는 영역도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 분야는 상생 협력이 가능한 인도적 분야의 대표주자로서 다른 분야 협력의 마중물이자 3국의 우호를 증진하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 때문에 한·중·일 보건장관회의가 3국 공동의 발전과 협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말처럼 한·중·일 보건장관회의, WHO, 유엔, 주요 20개국(G20) 관계장관회의 등 국제회의를 통해 쌓아온 3국 장관의 우정이 이러한 역할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보건의료 분야 국제협력의 중요성은 한·중·일 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올해를 돌아보면 우리나라 보건의료 협력이 양적·질적으로 많은 결실을 거뒀다. 전 보건복지부 실장이 우즈베키스탄 보건부 차관으로 임명돼 한국형 보건의료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우리나라가 WHO 집행이사국으로 진출한다. 올해 10월부터 1년간은 한국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27개국이 참여하는 WHO 서태평양지역 총회에서 의장직을 수행한다. 라오스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여러 아세안 국가와 보건의료 분야 대화체계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독립국가연합(CIS), 중동 국가 등에도 병원 등 보건산업 해외 진출이 활발한 한 해였다.

보건복지 분야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라는 인류애적 가치를 추구한다. 따라서 국가 간 협력 및 상생 관계 구축에 효과적이다.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국가라는 우리 경험과 역량으로 전 세계 보건의료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위상을 높이고, 더 나아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건강 증진’이라는 인류 공동체의 목표 실현에 있어 내년에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국제협력의 더욱 눈부신 활약을 기대해본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