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산모 위협 ‘고령·암·비만’ 3대요인 잡아야 안전한 출산

입력 2019-12-23 19:57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고위험산모클리닉 권자영 교수가 37세 고령 임신부의 태아를 초음파검사로 살펴보고 있다. 첫째를 제왕절개로 출산한 이 임신부는 임신 4개월의 둘째도 제왕절개 분만을 준비 중이다.

#1. 김연수(43·가명)씨는 2007년 결혼 후 8년만에 첫 아이를 임신했지만 자연유산이 됐다. 2년 뒤 다시 임신에 성공했으나 첫째를 유산한 탓일까 둘째도 잃었다. 나이도 있고 계속된 유산에 난임시술의 도움을 받아 쌍둥이를 가졌다. 임신 기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막달 출산을 앞두고 받은 검사에서 간수치가 100~125IU/ℓ로 평균보다 3배 넘게 올라갔다. 혈압도 160/105㎜Hg로 상승했다. 임신중독증이 온 것이었다. 담당 의사는 응급 제왕절개 분만을 결정했다.

#2. 2015년 결혼한 양민주(41·가명)씨는 8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받았다. 자궁에 생긴 물혹 제거 수술도 받았다. 결혼하면서 임신계획을 세웠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바로 시험관아기를 통해 임신에 성공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자 마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양씨는 유방암 치료가 먼저라는 주치의 권고를 받아들여 어쩔 수 없이 유산하고 수술받았다. 항암치료를 통해 암세포가 없어졌다는 진단을 최근 받고는 다시 아기를 가질 계획이다.

#3. 비만 상태로 첫째 아이를 어렵게 얻은 최모(42)씨는 출산 후 체중 관리가 잘 안 된 상황에서 둘째 아이를 가졌다. 지난해 초 임신 20주 최씨의 몸무게는 82㎏이었다. 키 161㎝를 감안하면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무려 31.63으로 고도비만에 해당됐다. 체중이 늘자 자궁경부가 1.5㎝로 짧아져 자궁경부를 묶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당뇨나 고혈압은 없었다. 의사는 몸무게가 6㎏ 이상 늘지 않도록 관리를 당부했다. 최씨는 86㎏의 체중을 유지해 얼마 전 아이를 무사히 낳았다.

앞서 세 사례는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고위험 임신’의 전형이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산모는 물론 태아의 생명까지 잃거나 태아의 경우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 있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고위험산모클리닉 권자영(산부인과) 교수는 23일 “지난해 기준 전체 분만의 약 37%가 이런 고위험 분만이었으며 그 중에서 임신중독증과 임신성 당뇨·고혈압을 가진 경우가 61%, 늦은 나이 임신이 37% 정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비만 상태에서 임신, 암 환자의 임신과 출산도 드물지만 근래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산모의 평균 출산 연령은 32.8세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분류한 만 35세 이상 고령 산모 비율은 32%로, 10명 가운데 3명 정도가 고위험 임신 상황에서 출산이 이뤄졌다. 10년 전인 2009년(15%)보다 배 넘는 수치다.

늦은 나이에선 임신 자체가 잘 되지 않지만 임신이 되더라도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 및 고혈압, 조기 태반 박리, 전치 태반, 출혈 등 각종 합병증 위험이 증가한다.

권 교수는 “여성 나이 만 35세가 되면 배란이나 임신율이 변하고 난자의 질이 떨어지면서 유전자가 불안정해 자궁 착상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임신 과정의 여성은 성인 육상선수가 달릴 때 뿜어내는 혈류를 감당하는 만큼의 심장 강도를 유지해야 되는데, 나이들수록 이런 강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태아의 염색체 이상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이가 많아지면 자연임신 혹은 난임으로 인한 보조생식술(시험관 아기 등)을 이용할 경우 다태아(쌍둥이, 삼둥이 등) 임신 확률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합병증이 늘어난다. 첫 아이를 유산한 경우 둘째 아이도 유산할 확률이 높다. 만 35세를 넘어 임신한 경우 자연 유산 가능성은 2~4배 높다.

권 교수는 “35세 이상 임신이 20대와 비교했을 때 위험도가 증가한다는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위험하다는 건 아니다”면서 “담당 의사와 가까이 지내며 산전검사를 철저히 받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임신성 당뇨나 고혈압은 체중과 관련있어 적절한 음식 섭취와 운동을 통해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면 부인과 검진을 통해 사전에 위험성 높은 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관리해야 한다. 특히 유방암이나 갑상샘암, 자궁경부암, 자궁·난소 이상 유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 중 암 진단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암 진단 여성의 10%가 45세 이상 미만이고 이들의 5년 생존율은 75~80% 정도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도 조기 진단과 의술의 발달로 극복하는 비율도 높다.

문제는 가임기 암 환자의 경우 항암 및 방사선 치료로 생식기 독성(난소기능 손상)을 나타내 치료 후 가임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2015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 30대 여성에서 갑상샘암과 유방암 발병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갑상샘암의 경우 치료 과정에 가임력 저하를 거의 일으키지 않고 치료 기간도 짧다. 하지만 유방암은 항암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고 장기간 항호르몬 치료를 받게 돼 치료가 끝난 뒤 가임력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최근 ‘난자 동결’ 등의 방식으로 암 치료 후 임신이 충분히 가능해지고 있다.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전 가임력 보존을 위해 난자를 미리 채취해 냉동보존해 뒀다가 암 치료를 끝낸 후 해동해 체외수정 등에 활용하는 것이다.

임신에 의한 자연스러운 체중 증가가 아닌, 원래 비만한 여성의 임신과 출산도 쉽지 않다. 비만 임신부는 임신 중 몸무게가 6~7㎏ 이상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임신할 경우 12~15㎏ 불어나고 마른 여성의 경우 15~20㎏ 증가할 수 있다. 뚱뚱할 경우엔 적정 체중을 유지하도록 식이조절에 특히 신경써야 한다.

권 교수는 “비만하면 임신성 당뇨와 고혈압, 혈전성 질환(폐색전증)에 잘 걸리고 뱃속 아기의 경우 ‘거대아’로 응급수술이 필요하거나 ‘신경관결손’ 같은 기형아 출산 위험도 높다”고 했다. 아울러 “엄마 뱃살이 두꺼우면 복부 초음파 투과율이 좋지 않아 태아의 신경관결손 같은 기형을 놓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모가 비만이라면 아기가 나오는 길인 자궁경부가 짧아져 조산 위험도 높아진다. 일반 산모의 자궁경부 길이는 3~5㎝로, 2.5㎝ 미만의 경우 짧다고 한다. 권 교수는 “기존 질환을 갖고 있거나 암 등 치료받고 임신했을 경우 엄마는 물론 태아의 안녕도 중요하기 때문에 소아과, 소아심장과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다학제 협진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고위험 임신부의 임신 전 건강부터 임신 중, 출산 후 응급상황까지 대처할 수 있는 토털 시스템을 통해 관리받으면 아기와 산모 모두 건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