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 확장, 출혈경쟁에 몰두해 온 유통업계가 일제히 내실 다지기에 들어섰다. 총수가 직접 챙긴 사업을 정리하는가 하면 핵심 조직을 축소하는 등 실적이 곤두박질친 오프라인에선 체질 개선을 위한 강력한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온라인 업계도 흑자 전환을 서두르며 실속 있는 경영을 꾀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온·오프라인 유통업계 여러 곳은 최근 사업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우선 이마트는 삐에로쑈핑 7개 지점을 순차적으로 폐점하기로 했다. 이마트는 지난 7월 18개 점포를 폐점한 H&B스토어 부츠도 추가 정리하고, 일렉트로마트에서도 영업 영역이 겹치는 일부 점포 영업을 정리할 계획이다. 대신 필리핀에 노브랜드 점포를 추가로 여는 등 해외사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삐에로쑈핑은 지난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직접 챙겨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삐에로쑈핑 정리를 두고 업계에선 이마트의 사업개편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마트는 전문점 사업이 연간 9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지난 2분기 사상 처음으로 이마트 전체 실적이 29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강희석 이마트 대표는 지난 10월 취임한 후 처음 진행된 이번 개편에서 결국 비효율 전문점에 칼을 빼들었다.
이마트는 기존 점포 리뉴얼과 해외사업 강화에 더 큰 의미를 뒀다. 이마트 관계자는 “삐에로쑈핑은 명동 등에 입점해 임차료가 높은 반면 비효율 사업이어서 정리한 것”이라며 “대신 이마트 월계점을 미래형 점포로 꾸미는 등 기존점을 리뉴얼하고 해외사업 강화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도 자사 유통 컨트롤타워인 롯데쇼핑을 대표이사 체제에서 사업부장 체제로 전환했다. 강희태 롯데그룹 유통BU장이 롯데쇼핑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백화점·마트·슈퍼·e커머스·롭스 등 롯데쇼핑 산하 5개 사업부문은 사업부장 체제로 축소됐다. 롯데쇼핑은 롯데가 ‘오프라인 유통 기업’이던 시절 중심 기업이었지만 그룹 중점 사업이 바뀌고 유통업계에도 온라인 시스템이 강화되면서 조직 축소를 피해가지 못했다.
온라인 업계도 숨 고르기에 나섰다. 11번가는 올해 3분기 연속 흑자를 냈다. 할인 쿠폰을 남발하는 가격경쟁에서 벗어나면서 적자 늪에서 빠져나왔다. 이커머스 업체 티몬도 내년부터 흑자 전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티몬은 지난해까지 매출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슈퍼마트 사업을 과감하게 접었다. 슈퍼마트는 신선식품 직매입 방식으로 운영돼 적자폭을 늘리는 주 원인이었다. 대신 타임딜을 확대하는 등 새 성장동력을 찾아내며 적자폭을 줄여가고 있다.
유통업계의 실속경영 전환은 출혈경쟁을 유도했던 쿠팡의 처지가 변한 것과 무관치 않다. 쿠팡은 2010년 창업 후 마케팅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며 온·오프라인 경쟁자들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최근 쿠팡의 공격적인 투자가 한계에 달한 것으로 보이는 징후가 포착되면서 경쟁자들도 일제히 내실 다지기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