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 법적 허점 활용 탄핵안 쥐고 지연 전술

입력 2019-12-23 04: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근교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참모들이 배석한 가운데 국방 예산의 근거가 되는 국방수권법(NDAA)에 서명하고 있다. 2020회계연도 NDAA는 주한미군 규모를 현행 2만8500명 수준으로 유지하는 조항과 동맹에 과도한 방위비 분담 요구를 경계하는 조항 등이 포함돼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싸고 암초가 부상했다. 미국 헌법이 탄핵 절차를 완벽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게 발단이 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절차를 해석하면서 사사건건 충돌하는 ‘룰의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민주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 탄핵안을 가결시켰지만 상원으로 탄핵 소추안을 송부하지 않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원에 탄핵 소추안을 송부할 경우 신속히 부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민주당이 법률적 허점을 활용해 탄핵 이슈를 좀 더 붙들어 매기 위해 지연작전으로 선제공격을 가한 셈이다.

CNN방송은 21일 민주당의 움직임을 ‘펠로시 일시정지(pause)’라고 표현했다. CNN은 “하원이 상원에 언제까지 대통령 탄핵을 전달해야 하는지 명문화된 법적 규정이 없고 관례만 있다”면서 “내년 11월 3일 대선까지 상원에 탄핵안을 넘기지 않는 일도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이 이처럼 절차를 미루는 이유는 상원 탄핵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민주당은 하원 탄핵심판 과정에 출석하지 않았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등 4명을 상원 탄핵심판의 새 증인으로 채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트윗 해고’를 당했던 볼턴 전 보좌관의 폭탄발언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그러나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추가 증인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대한 조용히, 최대한 신속히 탄핵 부결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 공화당의 전략이다.

힘겨루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내에서 상원 탄핵심판이 공정해야 치러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것이 민주당의 힘이라고 CNN은 전했다.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하원 탄핵 가결 이후인 19∼2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미국민의 52%가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한 것도 민주당 입장에선 긍정적 흐름이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내년 1월 3일까지 미국 상원이 휴가에 들어간 것도 초강수를 두는 배경 중 하나다. 민주당으로선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탄핵안 상원 송부를 합의하더라도 법률적 미비로 어떤 뇌관이 튀어 오를지 몰라 탄핵심판은 ‘산 넘어 산’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연설에서 민주당의 지연작전에 대해 “매우 불공정하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들(민주당)은 헌법을 어기고 있다”면서 낸시 펠로시 의장을 향해 “미친(crazy) 낸시”라고 거친 말을 쏟아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