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무대에 ‘아버지의 사랑’ 진한 여운

입력 2019-12-23 04:06
따뜻한 가족애를 통해 사랑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드는 뮤지컬 ‘빅 피쉬’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아버지는 못 말리는 이야기꾼이다. 자신의 휘황찬란한 경험담을 어린 아들에게 쉴 새 없이 늘어놓는다. 그 속에는 미래를 보여주는 마녀도, 목소리를 잃은 인어도, 동굴에 숨어 사는 거인도, 서커스단을 운영하는 늑대인간도 등장한다. 환상의 세계에 매료된 아들에게 아버지는 늘 ‘영웅’이었다.

한데 어른이 된 아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에는 진실이 없다고 힐난한다. 암에 걸려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아버지에게 ‘진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호소해보지만 소용없다. 아버지 물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서류 한 장을 통해 이윽고 진실에 다가간다.

국내 초연 뮤지컬 ‘빅 피쉬’는 한 가족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소소한 이야기다. 상상력이 뛰어난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남경주 박호산 손준호)과 현실주의자 아들 윌(이창용 김성철), 갈등을 빚는 부자를 자애로움으로 감싸 안는 어머니 산드라 블룸(구원영 김지우). 세 사람이 주축이 되는 극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든다.

대니얼 월리스 원작 소설(1998)과 팀 버튼 감독 영화(2003)로 유명한 작품으로,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였다. 영화의 감각적인 영상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뮤지컬에 대한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대만의 아날로그적인 매력이 상당하다. 영화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된다.

환상적인 무대 연출이 그 맛을 살린다. 마녀가 사는 숲과 거인의 동굴, 서커스 공연장 등의 배경이 동화적 감상에 흠뻑 젖게 한다. 배우들이 퍼펫(puppet·동물을 표현한 가면이나 인형)을 착용한 채 연기하는 코끼리와 거인의 움직임도 자연스럽다. 무대 가득 펼쳐진 수선화 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1막 엔딩신은 탄성을 자아낸다.

무대만큼이나 중요한 건 에드워드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력인데, 누구 하나 ‘구멍’이 없다. 아무런 분장 없이 10~60대 전 연령대의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낸다. 극적이지 않은 스토리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나, 그 끝에 스미는 감동은 진하다. 아버지의 사랑, 한 남자의 일생을 망라한 피날레가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내년 2월 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