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송세영] 새로운 100년, 제2의 3·1운동

입력 2019-12-21 04:02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이 저물어 간다. 올해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한국교회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뤄진 점이다. 3·1운동은 물론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의 실상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을 가졌는지 깨달을 수 있는 한 해였다.

3·1운동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참 인색했다. 1980년대 이후 진보적 시각에서 서술된 역사책을 통해 3·1운동을 접한 이들의 시각이 특히 그랬다. 지식인과 종교지도자 중심의 나약한 운동, 일제의 총칼 앞에 맨손으로 맞선 무모한 저항, 애꿎은 민초들만 목숨을 잃고 옥고를 치르게 한 사건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접한 젊은 층의 인식도 피상적이었다. 역사적 의미와 정신사적 의의를 생각해볼 만큼 의미있는 사건으로 여기지 않았다. 나머지 국민들의 인식도 나을 건 없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연례적으로 참석하는 관제행사 외에는 유관순 열사로 기억될 정도였다.

실질적으로는 99주년이나 101주년이나 다를 게 없지만, 100주년이 갖는 상징성과 힘은 컸다. 대중매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료와 증언을 찾아내고 운동의 의의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역사책에 주인공으로 기록되지 못했던 무명의 독립운동가들, 특히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발굴됐다. 다양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3·1운동은 박물관에 박제화된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삶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살아있는 사건임이 확연해졌다.

무엇보다 3·1운동은 실패한 운동이 아니었다. 1945년 광복, 이를 넘어 오늘날 대한민국에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민족·민주화 운동, 근대화 운동의 시작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한정해도 3·1운동의 정신과 에너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항일무장투쟁, 미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3·1운동을 통해 민족적 각성이 이뤄졌고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됐다. 구한말 세도정치와 신분제, 농민 수탈 등의 폐해로 민족적 동질성이 무너져내리고 자존감마저 낮아진 틈을 일제는 파고들었다. 기존 체제에 불만을 품거나 사리사욕을 탐하는 이들을 친일반민족세력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일제의 분리 통치 전략은 효과적이지 않았다. 3·1운동을 통해 신분과 계층, 지역, 종교를 뛰어넘어 하나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광복 때까지 이념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분열되려고만 하는 독립운동 진영을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 역할을 했다. 3·1운동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민족운동의 수원지와 같았다.

비폭력 평화운동으로서 3·1운동의 세계사적 의의에 주목하게 된 것도 큰 성과다. 항일무장투쟁은 높게 평가하고 비폭력 평화운동, 사회계몽 운동은 ‘개량’이라며 무시하는 경향이 지금도 강하다.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평화시위가 폭력시위보다 훨씬 더 어렵다. 총칼 앞에 맨몸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더 큰 용기와 신념을 필요로 한다. 3·1운동이 무장투쟁 형식으로 진행됐다면 많은 희생자를 낳은 사건으로 기록됐을 뿐, 민족적·정신적 운동으로 승화하진 못했을 것이다.

한국교회 입장에서 가장 큰 성과는 개신교가 3·1운동의 주도세력이었으며 많은 기독인이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음을 확인한 것이다.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는 서양 선교사들이 구축해놓은 전국의 학교와 병원, 그리고 그곳에서 사역하는 크리스천들의 역할이 컸다. 서양 선교사들은 국내에 들어와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자유 민주 평등 인권 같은 근대 민주주의의 가치를 교육했다. 신분 차별, 남녀 차별을 철폐하고 봉건적 악습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개신교는 3·1운동에 조직적·인적 자원뿐만 아니라 근대 민주주의 사상의 기초까지 제공했다.

개신교 대표 16명이 참여한 민족대표 33인이 대부분 변절했다는 오해를 씻은 것도 성과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민족대표 대다수는 독립 의지를 꺾지 않았다. 개신교 대표들도 중국으로 건너가거나 국내에 남아 넓은 의미의 독립운동을 이어간 이들이 많았다. 전면에 나서지 않은 이들도 묵묵히 목회 현장을 지켰다.

3·1운동 100주년은 지나가지만 무명의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운동의 전모를 복원하는 과제는 계속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100년에는 3·1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지 모색하고 실천하는 제2의 3·1운동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