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정치권·언론 불신… ‘아스팔트 보수’에 기대는 황교안

입력 2019-12-19 18:36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9일 국회 본관 앞에서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집회를 열고 있다. 황 대표는 “문희상(국회의장)을 물러나게 하는 게 이 나라 의회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며 ‘문희상 사퇴’ 구호를 외쳤다. 최종학 선임기자

기성 정치권과 언론을 불신하고 극렬 지지 세력에 기대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스타일이 당에 극우 이미지를 덧칠하고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이 보수 세력의 맏형 노릇을 하기보다 정제되지 않은 외곽의 목소리에 경도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중도층의 한국당 외면을 피부로 느끼는 소속 의원들의 우려도 커졌다.

황 대표가 ‘아스팔트 보수’로 지칭되는 극렬 지지자들에게 부쩍 친화적으로 다가간 것은 지난달 청와대 앞 단식농성 이후부터다. 그전까지 황 대표는 장외집회를 하더라도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강성 보수단체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풍찬노숙 형태의 단식 투쟁은 극렬 지지자들과 황 대표 사이의 장벽을 낮추는 장이 됐다. 황 대표는 단식 첫날 전 목사가 연 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했고, 이후 전 목사 지지자들은 단식농성 내내 황 대표 주변을 지켰다.

한국당 관계자는 “황 대표가 장외 투쟁을 잇따라 하면서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은 것 같다”며 “자기 주변에 있어준 지지자들에게서 힘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식 후 국회로 복귀한 황 대표는 극렬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인용하며 이들의 기대에 걸맞은 투쟁을 하라고 의원들에게 주문했다. 황 대표가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언급한 “당대표 단식 현장에 현역 의원들이 없었다”는 이야기나 “국회 농성장에서 의원들이 결기 없이 웃는다”는 지적은 모두 지지자들과 SNS 반응을 따온 것이었다. 보수 유튜버들을 국회의원 업무를 보조하는 의원실 소속 ‘입법보조원’으로 활용하자는 황 대표의 제안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제도 정치권 밖의 극렬 지지자들을 우군으로 삼은 대신 자당 현역 의원들과 언론에 대해선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당대표에게 불만이 있으면 직접 얘기하라며 의원들 군기 잡기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황 대표 측근으로 여겨졌던 일부 인사들이 ‘직언’을 하다 신임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당 일각에서 나온다. 한 의원은 “황 대표가 스타일상 현역 의원들 말을 듣지 않는다”며 “황 대표가 유튜브(극성 지지자들)에 경도된 것 같은 느낌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출입 언론사에도 공정 보도를 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박성중 한국당 미디어특별위원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불공정 보도에 대한 ‘삼진아웃제’를 실시하겠다”며 “1, 2차로 사전경고를 하고 3차에는 출입금지 등 다각도의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 방침을 황 대표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최근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 횟수도 대폭 줄였다. 기성 언론과의 소통은 소홀히 하는 대신 극단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모양새다.

지역구를 수도권에 둔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선 이대로 계속 가면 내년 총선 때 전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당이 극렬 지지층에 다가갈수록 중도층 민심이 떠난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최근 국회 내 규탄대회 폭력사태로 여론이 확 안 좋아졌다. 너무 오른쪽으로 간다는 말들이 들린다”며 “내년 총선에서 ‘영남 자민련’으로 쪼그라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국당은 이날 국회 앞에서 나흘째 집회를 이어갔다.

심우삼 김용현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