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를 진행하기 전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은 마지막 난상토론을 벌였다. 예정 시간을 2시간 가까이 초과한 열띤 공방전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탄핵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민주당에 맞서 온갖 은유를 총동원했다. 공화당 의원들의 비호 속에 트럼프 탄핵은 ‘예수의 수난’으로 둔갑됐다.
토론의 첫 주자는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었다. 평소 분홍색 등 밝은색 옷차림을 즐기는 그는 이날 옷깃이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채 “우리 공화국 건국자들의 비전이 백악관의 횡포로 위협받고 있다”고 말문을 뗐다.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국가’라는 건국 정신이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위기에 처했다는 취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장례식장에나 어울릴 법한 복장으로 발언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펠로시 의장은 “하원의장으로서 대통령 탄핵 토론을 엄숙하고 슬픈 마음으로 개회한다”며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탄핵 추진은 정무적 목적이 아닌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탄핵안 가결 후 환호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제지하며 “오늘은 미국에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제리 내들러 법사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사로운 정치적 이익을 우리의 안보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의 가치보다 위에 두었다”고 비난했다.
토론 개시 후 일부 의원들이 주어진 시간을 넘겨 발언하고, 공화당 의원들이 정회를 요구하는 등 신경전을 벌이면서 당초 예정됐던 6시간의 토론은 8시간을 넘겼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탄핵을 예수의 십자가형, 진주만 폭격 등에 비유했다.
배리 라우더밀크 의원은 “예수가 반역죄로 억울하게 기소됐을 때 본디오 빌라도조차 그에게 고발자를 대면할 기회는 제공했다”며 “엉터리 재판이 이뤄지는 동안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에게 제공한 권한이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공한 권한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재판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판결한 인물이다. 스캔들을 촉발한 내부 고발자가 증인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점을 꼬집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과정에서 예수의 수난 때보다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프레드 켈러 의원은 한술 더 떠 십자가형을 받을 당시 예수의 발언을 인용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예수와 등치시켰다. 그는 “오늘 탄핵안 찬성에 투표할 민주당 의원들은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운을 뗀 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을 박해 받는 예수로 묘사한 것이다.
마이크 켈리 의원은 일제의 진주만 공습을 거론했다. 공습 직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이날을 ‘국가 치욕의 날’로 선포했고 사흘 뒤 미 의회는 2차 세계대전 참전을 결정했다. 켈리 의원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치욕의 날을 언급했듯 오늘은 또 다른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존 랫클리프 의원은 “역사는 트럼프를 부당하게 탄핵된 후 재선에 성공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