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 한 남자의 생애 첫 팬미팅이 열린다. 데뷔 30주년이 가까워서야 성사된 이 행사는 예상치 못한 세간의 관심에 힘입어 성사됐다. 주인공은 ‘90년대 지드래곤’으로 불리는 가수 양준일(50).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한 해 전인 1991년 ‘리베카’ 등 개성 넘치는 댄스곡을 진즉 선보였던 그는 최근 예능 ‘슈가맨’(JTBC)에 얼굴을 비추며 연일 화제 몰이를 했다.
사실 양준일에 대한 관심은 슈가맨 이전에도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앨범 3장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던 그를 2019년으로 소환한 건 다름 아닌 유튜브였다. 8090 가요를 스트리밍하며 이른바 ‘온라인 탑골공원’으로 이름 지어진 SBS ‘K팝 클래식’ 등의 채널은 1020세대에까지 인기를 끌었다. 네티즌들은 여기서 지드래곤을 닮은 외모와 트렌디한 노래, 세련된 무대매너에도 주목받지 못했던 양준일에게 ‘비운의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아줬다.
과거 콘텐츠를 새 방식으로 향유하는 ‘뉴트로’ 바람이 비단 양준일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뉴트로는 이제 문화 전반을 관통하는 트렌드로 똬리를 틀었다. 근래 드라마 ‘야인시대’(2002)의 대사 “4달라”로 인기를 끈 김영철과 영화 ‘타짜’(2006)의 곽철용으로 전성기를 맞은 김응수도 이 같은 뉴트로 열기를 탄 경우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뉴트로 콘텐츠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튜브의 대중화와 더불어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발굴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이제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 직장인 박지완(25)씨는 “과거 영상의 예스러운 감성은 요즘 유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라 특별하다”며 “사람들이 직접 콘텐츠를 찾아다니고, 의미를 더해나간다는 게 특히 재밌는 부분인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독창적인 콘텐츠에 대한 갈망이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봤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밀레니얼 세대는 유니크한 걸 찾고 소비하는 걸 즐긴다”며 “복고 콘텐츠가 가진 아날로그적 정서와 통일되지 않은 다양성은 그 자체로 새롭고 특별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힙(트렌디)’하다고 이야기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방송사들은 앞다퉈 옛 방송을 재가공해 내보내고 있다. SBS의 K팝 클래식 이외에도 KBS는 ‘어게인 가요톱10’ 채널을 통해 90년대 가수들의 영상을 선보이는 중이다. 드라마나 시트콤도 뉴트로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는데, MBC는 채널 ‘옛날 드라마’에 자사의 과거 드라마들을 업로드하면서 196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SBS가 시트콤 등 레트로 콘텐츠를 편집해 업로드하는 채널 ‘스트로-복고채널’도 구독자 20만명을 넘기며 흥행 중이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