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최고 명반은 래퍼 이센스의 ‘옥중 앨범’

입력 2019-12-23 04:05
래퍼 이센스가 출소 이듬해인 2017년 2월 28일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일보는 2010년대의 끝을 앞두고 지난 10년간의 가요계 명반과 명곡을 알아보는 시리즈를 2회에 걸쳐 내보낸다. 음악 웹진 ‘이즘’에서 활동하는 음악평론가 14명이 참여한 설문을 토대로 순위를 매겼다. 첫 회에서는 지난 10년간 가요계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음반들을 소개한다.


2015년 8월 27일, 가요계에는 전례를 찾기 힘든 ‘옥중 앨범’이 출시됐다. 래퍼 이센스가 내놓은 ‘디 애넥도트(The Anecdote)’였다. 이센스는 그해 4월 대마초 흡연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앨범은 그의 신산했던 삶을 엿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는데, 듣는 이의 기분을 한없이 까라지게 만드는 곡들이 많았다. 하지만 평단에서는 격찬이 쏟아졌다. 앨범은 이듬해 2월 열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에 선정됐다. 당시에도 이센스는 연단에 오를 순 없었다. ‘옥중 앨범’에 이은 ‘옥중 수상’이었다(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은 이센스는 2016년 10월이 돼서야 출소했다).

평론가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에서도 이 음반을 향한 호평은 쏟아졌다. 평론가 14명은 각각 2010년대 명반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3장씩 추천했는데, ‘디 애넥도트’는 5표를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정민재는 “담백하고도 강렬했던 힙합 문제작”이라고 했고, 정연경은 “신랄한 자조와 힐책을 통해 엿보게 만드는 시대정신”이 음반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황선업은 “대중음악계의 모든 패러다임과 클리셰를 거부하며 탄생시킨 자서전”이라고 평했다. 임동엽은 “진솔한 자기 이야기는 힙합에서 더욱 묵직함을 발휘한다”고 했으며, 장준환은 “한 사람의 생애를 눌러 써 내려간 때묻은 가사장”이라고 규정했다.

이센스 ‘디 애넥도트’

음반은 이센스가 래퍼 사이먼 도미닉과 슈프림팀으로 활동하다가 독립해 내놓은 첫 솔로 앨범이었다. 진솔한 이야기가 쌓아 올린 서사가 뛰어난 래핑과 만났을 때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음반이 출시됐을 땐 힙합 마니아들도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예약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한 힙합 온라인 매체는 접속량이 폭주하면서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힙합 음반으로는 드물게 이 앨범은 2만5000장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조용필 ‘헬로’

‘디 애넥도트’에 이어 많은 지지를 받은 음반은 조용필이 2013년 발표한 19집 ‘헬로(Hello)’였다. 4명이 이 음반을 201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꼽았다. ‘가왕(歌王)’ 조용필이 10년 만에 내놓은 정규 음반이어서인지 ‘헬로’가 발표됐을 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조용필은 당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차트 10위권에 잠깐 올라갔다 내려와도 대성공”이라고 했는데, 결과는 그의 기대를 크게 뛰어넘었다. 첫 트랙인 ‘바운스(Bounce)’는 각종 음원 차트 정상을 석권했다. TV 순위 프로그램에서도 1위에 올랐다. 음반명과 동명의 타이틀곡 ‘헬로’, 발라드 ‘걷고 싶다’도 인기를 끌었다. 음반을 조금이라도 먼저 구하려는 팬들 때문에 일부 매장에서 앨범이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조용필은 그야말로 ‘국민 가수’의 뜻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평론가들이 이 음반을 치켜세운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신구(新舊)를 통합한 진정한 대중음악”(임동엽)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으려는 노장의 끊임없는 노력에 무한한 존경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작품”(소승근) “살아있는 전설, 조용필은 음악 앞에 한없이 겸손했다”(정효범)….

방탄소년단 ‘러브유어셀프 전 티어’

평론가들이 설문에서 언급한 앨범은 이들 두 음반을 포함해 모두 30장에 달했다. 아이돌 그룹의 음반부터 인디 밴드의 앨범까지 다양한 음반이 호평을 받았다.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중에서는 타이틀곡으로 ‘페이크 러브(FAKE LOVE)’를 내세운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2018)와 ‘봄날’이 수록된 ‘유 네버 워크 얼론(YOU NEVER WALK ALONE)’이 각각 2표, 1표를 받았다. 박수진은 ‘러브 유어셀프…’에 대해 “뚜렷한 콘셉트로 BTS의 세계관을 확실히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박효신 ‘I am A Dreamer’
에프엑스 ‘Pink Tape’
3호선 버터플라이 ‘Dreamtalk’

BTS 외에도 걸그룹 에프엑스의 두 번째 정규음반 ‘핑크 테이프(Pink Tape)’(2013),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드림토크(Dreamtalk)’(2012), 박효신의 귀환을 알린 ‘아이 엠 어 드리머(I am A Dreamer)’(2016)가 각각 2표를 받으며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0년간 음원 시장을 쥐락펴락한 싱어송라이터 아이유는 정규 3집과 4집이었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2013)와 ‘팔레트(Palette)’(2017), 미니음반 ‘챗-셔(CHAT-SHIRE)’(2015)가 각각 1표씩을 얻었다.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가나다 순)

김도헌 김반야 박수진 소승근 손기호 임동엽 임선희 장준환 정민재 정연경 정효범 조지현 황선업 황인호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