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하나님의 선물] “태아는 생명이다” 낙태 없는 세상 위해 피켓을 들다

입력 2019-12-20 00:06
수원의 미혼모·부 지원단체 ‘러브더월드’ 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2018년 겨울 ‘아름다운피켓’측과 협력해 낙태방지캠페인 문구가 써진 팻말을 들고 거리 홍보에 나섰다. 아름다운피켓 제공

서윤화 대표 인터뷰

성탄절을 앞둔 서울 시내의 한 번화가. 인공임신중절(낙태) 방지 캠페인을 벌이는 행사장에 한 연인이 들어섰다. 10주 된 태아는 생명인지 아니면 세포에 불과한지를 묻는 조사 판에 남성은 “당연히 생명이지”라며 ‘생명’ 쪽에 스티커를 붙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여성은 그를 타박이라도 하듯 “당연히 세포”라며 냉랭한 표정으로 ‘세포’ 쪽에 스티커를 붙였다. 마치 ‘세포여야만 한다’는 표정이었다.


서윤화(40) 아름다운피켓 대표가 낙태방지캠페인을 벌이며 실제로 마주했던 한 사례를 각색한 내용이다. 지난 20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 대표는 “그 여성의 선택은 어떻게 보면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춰 교육받은 결과가 아닐까 한다”면서 “많은 이들이 자기 죄책감을 더는 방법으로 ‘세포니까 낙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2011년부터 서울 대전 등의 번화가에서 낙태방지 문구가 써진 팻말을 들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단체 이름처럼 ‘아름다운 피켓’ 캠페인이다.

서 대표는 그해 11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 성탄절 시즌이 되면 무분별한 성관계를 갖는 남녀가 많아져 이듬해 수많은 아기의 낙태로 이어진다는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울고 계신 예수님의 마음을 느낀 그는 요동치는 마음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담임목사를 설득했다. 담임목사의 지원 아래 교회 청년들과 함께 낙태방지 문구가 써진 현수막을 제작해 성탄의 기쁨이 완연한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시작된 낙태방지 캠페인이 올해로 9년째를 맞는다.

‘아름다운피켓’측이 지난해 홍대 일대에서 진행한 태아에 대한 시민인식 스티커 설문조사표. 서 대표에 따르면 강남 지역에서 태아를 ‘세포’로 보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아름다운피켓 제공

아름다운피켓 측은 팻말을 들고 시민들에게 낙태방지를 촉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사진 올리기, 태아 인식 스티커 설문조사를 병행하며 시민 인식의 변화를 꾀한다. 시민들에게 10주 된 태아의 발 모형 배지를 선물로 제공하며 그들에게 태아가 ‘생명’임을 인식시켜 나간다.

아름다운피켓 측은 지난해 기독교 자살 예방단체 ‘라이프호프’와 협력해 ‘1365자원봉사포털’을 통해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하루에 40명씩 청소년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1365자원봉사포털로부터 봉사자 모집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유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서 대표는 낙태 합법화 시류 등 정치적 요소 때문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서 대표는 “이 캠페인은 사실 눈으로 사역의 열매를 직접 보기 힘든 사역”이라며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일인데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길이 막히는 걸 보니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도 이 사역을 멈출 수 없는 건 하나님께서 한 생명이 살게 되는 열매를 직접 보여주시며 위로해주셨기 때문이다.

낙태방지 캠페인인 줄도 모르고 친구를 따라와 억지로 캠페인에 참여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20대 초반 여자 친구가 아이를 낙태토록 한 경험이 있었다. 캠페인 초반엔 마음이 불편했지만, 점점 보람을 느끼며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캠페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친구 커플의 혼전임신 소식을 듣게 된 그는 ‘낙태는 절대 안 된다. 결혼하라’고 강력히 권유했다. 친구 커플은 결국 결혼 날짜를 잡았다. 예전 같으면 친구가 낙태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을 그였겠지만 캠페인은 그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서 대표는 그처럼 봉사활동에 참여한 중·고등학생 봉사자들도 캠페인 후 태아의 소중함과 성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되는 게 큰 보람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암담하다. 지난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약 4만 9764건의 낙태 시술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됐다. 매일 136명의 태아가 낙태로 생명을 잃고 있다. 서 대표는 “특히 성탄절 분위기에 휩쓸린 무분별한 성관계가 낙태로 이어진다면, 성탄절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아이러니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면서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성탄의 기쁨만을 누릴 게 아니라 죽어가는 아이를 보시며 울고 계실 예수님을 생각해 교회 밖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성경에 나온 것처럼 행동하는 이웃이 돼야 한다. 교회 내부 일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생명을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 대표는 오는 24일까지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집중적으로 낙태방지 캠페인을 벌인다. 이어 아름다운피켓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비영리 단체로 확대해 낙태방지 사역을 활성화하는 구상을 실현할 계획이다.

임보혁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