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와 척하면 척… 이게 궁합”

입력 2019-12-19 04:05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연기한 최민식. 장영실과 본인이 닮은 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배우는 감성과 이야기에 집중하는 반면, 과학자는 학문의 원리를 탐구하고 창작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초등학생들도 알 만한 위인이다. 그가 세운 업적은 줄줄이 나열할 수 있을 정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배우 최민식(57)이 깨워낸 ‘인간 장영실’은 어떤 모습일까.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최민식은 관청 노비였으나 천문학 등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종3품까지 오르는 장영실을 연기했다. 극 중 그는 순수하게 학문을 좇고 자신을 믿어주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는, 천진한 인물로 그려진다.

팩션 사극을 표방한 영화는 역사에 상상력을 가미했다. ‘장영실이 감독한 안여(安輿·임금이 타는 가마)가 튼튼하지 못해 부서져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했다.’ 세종실록의 문장을 끝으로 장영실에 대한 기록이 역사에서 사라지는데, 허진호 감독은 이에 의문을 품고 이야기에 살을 붙여나갔다.

장영실과 그의 능력을 알아본 세종대왕(한석규)의 관계가 극의 중심을 이룬다. 1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은총이자 행복이다. 더구나 임금이 나를 알아준다면 무한한 애정과 존경심, 충성심이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의 관심사를 나누는 두 사람 모습이 친근하다. 특히 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빛을 비춰보는 장면에서는 마치 어린아이들 같다. 최민식은 “장영실이 세종의 침소에도 드나들 정도로 가까이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사석에선 더욱 스스럼없는 사이였으리라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아는 역사를 그대로 재연하는 건 재미없지 않나요?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역사적 인물에 누가 되지 않는 한, 최민식만의 표현을 담으려고 노력했죠. 그게 역사물 작업을 하는 재미이자 묘미인 것 같아요.”

최민식과 한석규가 주고받는 팽팽한 연기 호흡이 이 영화의 백미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쉬리’(1999) 이후 20년 만에 한 작품에서 조우했다. 최민식은 “한석규와의 실제 친분이 연기에도 도움이 됐다”며 “눈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겠더라”고 회상했다.

“현장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았어요.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만 갖고 들어가죠. 리허설 없이 촬영에 들어가도 그냥 통하더라고요. 어떤 감정을 표현해도 서로 다 받아내는 거예요. 이런 게 궁합이구나 싶었죠. 미리 말 맞춰 연기하는 건, 맛이 없잖아요.”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명량’(2014)의 흥행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관객 1761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1위에 올라있다. 이후 출연한 ‘대호’(2015) ‘특별시민’(2016) ‘침묵’(2017)의 성적은 부진했던 터라,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

최민식은 “‘명량’의 영광은 이미 잊었다. 흥행 스코어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지만, 연연하진 않는다”고 했다. “연기 이외의 다른 건 신경쓰지 말고, 그저 이 재미에 취해 살자는 생각입니다. 이러다가 또 ‘천문’ 예매가 시작되면 곧바로 예매율부터 확인해보겠지만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