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새 먹거리 개발하고 아이돌봄 카페 열고… 농어촌에 ‘젊음의 씨앗’ 심은 청년들

입력 2019-12-19 21:46 수정 2019-12-19 21:59
청년들이 지난 9월 경남 통영 한 문화공간에서 지역 음식전문가들과 지역 전통음식문화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음식전문가가 재현한 통영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요리법을 발굴했다. 행정안전부 제공

경남 통영에 굴·충무김밥의 아성을 넘어설 새 먹거리가 있을까. ‘메이드 인 통영’ 청년들은 통영식 전통비빔밥을 내세운다. 큼지막한 재료와 해초류를 듬뿍 넣은 뒤 해산물 탕국을 부어 촉촉하게 마무리한 통영너물비빔밥이 통영의 대표 먹거리를 바꿀 것이라는 소리다. 메이드 인 통영의 멘토 이상희씨는 “굴은 요리가 아닌 지역 수산물, 충무김밥은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관광객을 위한 음식”이라며 “전주비빔밥처럼 통영색이 짙은 전통비빔밥이 최근 주춤했던 관광객들의 발길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이드 인 통영은 통영의 잊힌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청년 4명이 결성한 팀이다. 너물비빔밥 밖에도 전복물회(전복 우린 물을 차갑게 식혀 만든 물회), 설치국(미역무침에 콩나물국을 섞어 촉촉하게 한 나물) 요리법과 역사를 기록했다. 기록물 정리가 끝나면 본격적인 음식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다. 이씨는 “통영은 바다사람들이 바다 위에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간편하게 먹기 위해 섞어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며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기 충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청년들이 농어촌 살리기에 뛰어들고 있다. 일반 청년들의 ‘지역이탈 및 기피’ 원인인 산업침체·육아시설 부족·문화 부족 해소에 집중한다. 고유한 지역색을 되찾아 인구감소→지역소멸을 막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공무원이 아닌 청년들의 눈으로 사업 아이템을 선정한다. 이들 사업은 행정안전부 청년공동체 활성화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청년농부들이 지난 8월 경남 함안 한 사무실에서 ‘사진촬영 무료강연’을 마친 뒤 수강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같은 경남이라도 바닷가·관광지인 통영과 달리 농촌인 함안에서는 청년농부들이 활약한다. 귀농한 청년과 원래 농사를 짓던 청년 4명이 모여 청년 공동체 ‘함안인싸’를 결성했다. 지역 특산물인 파프리카와 곶감을 재배하면서 농촌에 정착하려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함안인싸 팀원 이성주씨는 “농촌에선 주로 어르신들이 주요직을 차지하다보니 청년들의 목소리가 소외되기 쉽다”며 “청년들이 자신 있게 농촌으로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또 다양한 지역 콘텐츠를 생산한다. 지역의 농산물 자원을 정리한 마을지도가 대표적이다. 아울러 벼룩시장을 연계한 농산물 판매 및 판로개척 방안을 모색한다. 또 무료 강의를 통해 지역주민들이 모일 기회를 늘렸다. 함안농부 협동조합과 협력시스템을 만들어 지속적인 청년공동체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씨는 “농촌은 좁기 때문에 이미 학연·지연에 얽힌 경우가 많다”며 “연고 없는 청년들이 활동하려면 모임 기회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밌는 것들이 많아야 도시로 나가지 않는다”며 “지역 내 청년들의 놀 거리를 많이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행안부 청년공동체 사업은 지자체 청년공동체를 육성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는다. 이게 씨앗이 돼 지역 활력이 살아나고 경제 활성화로까지 이어지도록 만든다는 게 정부 청사진이다.

이를 위해선 청년들이 스스로 계획한 사업을 지역 실정에 맞게 조정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이어 청년공동체가 지역주민과 지역사업을 발굴해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해 지역을 매력적인 정착지로 발돋움시켜야 된다.

순천·청송 청년들이 지역의 구심점으로 선정한 아이템은 ‘아이 돌봄’이다.

청년들이 지난 8월 전남 순천에서 열린 문화재에서 지역 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순천청년팀은 지역 아동을 위한 요리법을 개발해 인기를 끌었다. 이 지역 대표 작물인 복숭아의 낙과를 활용해 음료수와 파이, 케이크, 과자를 만들었고 다른 작물인 감으로도 푸딩을 만들었다. 또 좋은 갯벌에서 나는 칠게를 마라와 접목시킨 마라 칠게를 개발했다. 요리법 개발과 함께 아이들 대상 식문화 교육을 병행했다.

아울러 매실·레몬청 등 지역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를 개발해 한국식 디저트 카페 창업을 추진한다. 이들은 순천야행 문화제에 참가해 지역 음식을 활용한 시연회 및 시식회를 진행했고, 특산물 조리법의 상품화를 제안했다.

청송서는 아동돌봄카페가 운영된다. 청년들이 세운 아이돌봄카페 ‘품애’는 네 시 이후 하교하는 학생들을 돌봐주는 카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도 부모님들도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게 했다.

품애는 지역의 돌봄 한계를 청년과 주민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 품애 운영팀의 멘토 황진호씨는 “지역 스스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며 “청년, 노인, 지역 주민 이주여성들이 모두 선생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동안 지역은 젊은 부모를 위한 인프라 부족이 약점으로 꼽혔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 문화, 의료 시설이 없다는 것. 정부가 아무리 좋은 지역 이주 장려 정책을 내놔도 지역에는 인프라가 없어 이주하기 싫다는 불평이 많았다. 예컨대 도시에는 다양한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이 있지만 지역은 강사진이 많지 않아 프로그램이 적다.

순천과 청송 두 지역은 서로 돌봄 노하우를 공유하는 형태로 협력이 기대된다. 순천지역의 아동 먹거리, 식생활 교육을 청송 아동돌봄카페 프로그램에 접목할 계획이다. 이어 농어촌 지역 간 아이들 학습여행 같은 교류 프로그램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원주에서는 ‘지역 고유 문화 발굴’이 활발하다. 재개발이 정체되면서 문화적으로 고립된 원인동의 마을 담소록 작성이 대표적이다. 청년들이 경로당을 찾아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만들었다. 또한 ‘경로당 요리법’을 발굴했다. 식당을 운영했던 경로당 노인들에게 요리를 배운 뒤 책으로 엮었다.

청년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영상과 사진 콘텐츠를 제작했다. 청년들의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노하우와 이주 청년들이 지역에 바라는 점 등을 담았다.

콘텐츠에서는 지역 이주 전 지역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조됐다. 원주청년팀 멘토 한주이씨는 “지역에 정착을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지역을 어떻게 바꿔야하는지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먹고 살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의 연령분포부터 해서 지역이 갖는 특수성을 파악해야 한다”며 “공단인지 도농복합형 도시인지 등, 지역마다의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반적인 성공사례보다 지역에 맞는 처방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안으로 들어가서 지역 기관들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한씨는 “원주는 지역내 정착하려고 하는 청년들이 강원도의 다른 지역보다 많은 편”이라며 “청년들이 주축이 되는 지역문화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고 분석했다.

행안부는 지난 7월부터 약 6개월 동안 20개 인구감소지역에서 활동할 청년 106명과 지역정착 경험을 가진 멘토 20명을 청년 활동가로 선발했다. 뽑힌 청년들에게는 ‘지역리더 양성’ ‘경제공동체조직 형성’ ‘지역특화형 창업’ 목표에 맞춰 교육 및 컨설팅을 지원했다.

선정된 청년활동가 팀은 청년 20대 71명(67%), 30대 35명(33%)로 구성됐다. 팀별로는 신규 팀이 16팀(80%), 기존 4팀(20%)을 차지했다. 개인별로는 신규청년이 93명(88%), 기존 13명(12%)이었다.

행안부는 “지난해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 동안 청년들이 지역 정착을 위해 다양한 고민을 했다”며 “단기간 의미있는 결과를 내긴 어려웠지만 청년들이 이번 사업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청년과 정부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