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와해’ 사과… ‘비노조 경영 시대’ 끝냈다

입력 2019-12-19 04:01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의 사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18일 ‘노조 와해’와 관련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국민일보DB

삼성이 오랫동안 고수해왔던 ‘비(非)노조 경영’ 방침을 사실상 폐기했다. 삼성은 그간 노조를 바라봤던 회사의 시각에 대해 반성하고 노조와 건강한 관계를 맺겠다고 선언했다. 법원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사건’으로 기소된 삼성전자 임원들을 유죄 판결하는 등 삼성의 비노조 경영 방침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과거와 크게 바뀐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은 18일 입장 자료를 내고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이 노조 문제와 관련해 사과하고 노조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은 고(故)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노조가 필요 없는 회사를 중요한 가치로 삼아 왔다. 이건희 회장 때에도 이 방침에는 변화가 없었다. 삼성전자는 2011년까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우수한 근로 환경을 조성해 전 임직원이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처우와 상관없이 근로자의 권리인 노조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삼성에 대한 비판 여론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삼성전자는 2012년 보고서부터 이 문구를 삭제했다.

삼성이 노조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은 그동안 근로자와 생긴 갈등으로 인해 비싼 수업료를 내며 배운 게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특히 반도체공장 백혈병 발생 문제를 두고 10년간 분쟁을 겪으며 근로자와 소통의 필요성을 느꼈다. 여기에 노조 와해 사건으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법정구속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더 이상은 과거의 방식이 유효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이 공식적으로 노조를 인정하는 데는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단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총수가 된 이후 ‘상생’을 경영의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행사에서도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자”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법원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이 입장을 낸 것은 향후 판결과 상관없이 회사의 방향을 바꾸겠다는 것이어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입장 변화에 따라 앞으로 삼성전자와 계열사의 노조 활동은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삼성전자 노조가 지난달 16일 공식 출범했고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증권, 에버랜드, 에스원 등도 노조가 설립돼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