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 지명자는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의외로 강단이 세고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또 상당히 개혁적인 시각을 가졌다. 인품은 온화할지 몰라도, 생각은 진보쪽이고 원칙을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한테 ‘협치’ 주문을 받았지만, 아마 여당에서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결국 그런 점이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김진표 의원을 밀어낸 배경이기도 하다.
중도적 인사로 비쳤던 정 지명자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뀐 게 2009년 민주당 대표 시절 이끌었던 미디어법 투쟁 때다. 이명박정부가 보수 성향 매체들을 염두에 두고 종합편성채널을 만들려고 하자 장장 6개월 동안 투쟁했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 국회 충돌을 ‘동물국회’라고 부른다면, 당시 민주당의 투쟁과 여야 충돌은 ‘핵전쟁국회’로 불릴 만큼 거칠었다. 그 투쟁을 ‘미스터 스마일’이 이끌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혜영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여야 협상에서 돌아오면 정 지명자가 번번이 미흡하다고 퇴짜를 놓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래서 이번 총리 인사를 한마디로 규정하면 친문 주류가 개혁적 총리를 발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가 중요하지만, 기왕이면 보다 개혁적 마인드를 가진 인사에게 맡기는 게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총리 지명 때 끝맺음말로 “함께 잘사는 나라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해 달라”고 당부한 것도 경기 활성화에 나서더라도 개혁적인 측면에서 후퇴하지 말라는 주문을 한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총리에 이어 다음 대선에 나설 주자 역시 결국 개혁적인 인사를 고를 것이다. 차라리 선거를 지고 말지 개혁 노선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나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등 개혁 성향 인사들이 별 활동을 하지 않아도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역시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요즘 박원순 서울시장이 종합부동산세 3배 인상 같은 급진적 정책을 연일 쏟아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런 점에서 차기 대선주자로서 정 지명자의 잠재력에 주목한다. 유 이사장이나 이 지사처럼 너무 급진스러워 보이지 않으면서도 개혁적이고, 그들과는 달리 당내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총리를 하는 동안 정세균계는 더욱 확장될 것이다.
민주진보 진영의 대선주자가 되기 위한 징표와도 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깊은 편이다. 정 지명자는 민주당 대표로 있는 동안 노 전 대통령 상을 치러냈고, 서거 이후 이명박정부에 대한 강경 투쟁을 이끌었다.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부산이나 경남에 가면 봉하마을을 자주 찾기도 했다. 퇴임해 힘이 빠졌을 때이고, 검찰 수사까지 받던 대통령이었지만, 정 지명자가 아주 깍듯하게 모신 것을 친노계 인사들이 잘 기억하고 있다. 친노계 핵심 적자는 아니지만, 친노계도 좋아할 만한 인사가 정 지명자다.
이런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총리 역할을 잘해야 품을 수 있는 게 대권이다. 특히 경제 살리기가 급선무다. 그가 실물경제인 출신이지만, 그건 30~40년 전 경험일 수 있다. 또 산업부 장관 출신이긴 하나 14년 전과 지금의 환경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경제를 살리라는 특명이 떨어진 총리직 제안이 어쩌면 독배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여당, 내각 전체가 정 지명자를 적극 도와줘야 한다. 또 성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아울러 경제는 진영을 넘어 나라의 미래와도 관련돼 있어 야당들도 통 크게 총리 인준을 해줘야 한다. 한국당 스스로 현 시국을 비상시국으로 규정했으니 총리 인준도 그에 걸맞게 처리해야 한다. 특히 내년 1분기가 나라 경제에 중차대한 시점임을 감안하면 하루라도 빨리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