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저물가의 늪’에서 헤어나올 줄 모른다. 내년 물가상승률이 1%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내수 침체로 민간소비가 부진한 데다 정보기술(IT) 발전에 따른 유통비용 절감, 고령화에 따른 소비 감소 등의 ‘저물가 파도’가 전 세계에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가 회복을 위해서 한국은행이 내년 상반기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한다고 관측한다.
한은은 18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점검’ 보고서를 내고 내년과 202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 1.3%를 기록한다고 내다봤다. 한은은 “올해(0.4%)보다 나아지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회복 속도가 더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후년까지 물가상승률이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0%)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진단이다.
한은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민간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 물가 상승을 떠받칠 여력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투자 부진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기업 수익성 악화는 임금 상승률을 제한했고, 이는 가계의 구매력을 끌어내려 민간소비 증가세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은은 정부의 복지정책도 물가 하락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봤다. 내년에도 정부 복지지출 확대 기조가 이어지면 물가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은은 올해 물가 예측이 크게 빗나간 배경으로 정부의 고교 무상교육 시행, 무상급식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들었다.
또한 저물가를 야기하는 ‘글로벌 경제구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IT 발달과 공유경제 활성화로 생산·유통비용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고령화·자동화로 노동비용마저 감소 추세다.
이에 따라 한은이 추가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지난 17일 공개된 11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기준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낸 금융통화위원은 당초 알려진 1명이 아닌 2명이다. 조동철 위원으로 추정되는 한 위원은 “기준금리를 하향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다음 회의로 ‘이연(移延)’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내년 상반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게 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규제 강화 정책으로 통화정책 운신의 폭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물가 안정을 위해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외환보유고 수준이 높아 미국과 기준금리 차이에 따른 자본유출 부작용도 적다. 내년 상반기 기준금리가 한 차례 내려갈 것”이라고 봤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