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진위내 의료인사 반발로 C형간염 국가검진 무산 의혹

입력 2019-12-22 18:16
한 대학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환자들이 검진을 기다리고 있다.

C형간염의 국가검진 도입이 무산된 배경에 국가검진위원회 소속 의료계 인사들의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이 나온다. 국가건강검진 항목 선정이 일부 의료계 의견에 휘둘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015년 ‘다나의원 집단감염 사태’로 국민적 혼란을 부른 C형 간염은 혈액을 매개로 전염되는 감염성 질환이다. 다행히 '완치'가 가능한 치료제가 있어 대한간학회 등에서는 국가검진을 통해 숨은 C형간염을 찾아 치료하면, 추가 전파를 막고 C형 간염 박멸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C형간염 국가검진 도입안은 국가건강검진심의위원회의 정식 심의에도 오르지 못한 채 제외됐다. 의료계에서는 국가건강검진위원회 소속 의료계 인사들과 관련된 소문이 파다하다. 급기야 검진위 위원들이 C형간염 국가검진 도입안이 통과되면 총괄 사퇴하겠다며 압박을 넣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대한간학회, 국가건강검진항목분과소위원회는 지난해 7월 C형간염 국가검진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비공개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검진위 소속 의료계 인사들이 ‘C형간염을 국가검진에 도입할 경우 반대 성명을 내겠다’, ‘국가검진위원회서 총괄 사퇴하겠다’, ‘안건이 그대로 통과하면 조심해야할 것’등 강경한 목소리를 내면서 실랑이가 일었다는 것. 보건복지부와 검진위는 국내 C형 간염 유병률이 1%미만(0.6-0.8%)으로 국가건강검진 항목기준인 5%보다 낮고, 비용효과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중감염 위험이 있는 C형간염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는 등 설득력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표된 C형간염 검진 비용 효과성 연구에서는 유병률이 0.07% 이상만 되어도, 전국민 평생 1회 항체 검사가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또 미국 질병예방위원회(USPSTF)는 올해 8월 18세 이상 79세 이하 모든 성인을 C형 간염 항체 검사 대상으로 확대하는 권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자궁경부암의 경우 유병률이 3.1%이지만 국가암검진에 포함돼있는 등 질환의 중요성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포함한 항목들이 존재한다.

C형간염 국가검진의 ‘비용효과성’도 정부용역연구를 통해 효과가 충분하다는 결과가 나온 상황이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숙향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의 한국의 최근 C형 간염 현황과 대책 연구에 따르면, 국내 40-65세 인구를 대상으로 국가검진체계(피검사)에 포함해 일생에 1회 C형간염 항체검사를 2년 동안 시행하고 선별된 환자를 치료할 경우, 인구 10만명당 C형간염에 의한 사망 32건과 간암발생 24건을 감소시킬 수 있고, 비용효과성도 충족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환자들도 의문을 제기한다. 윤구현 간사랑동우회장은 “정부는 C형 간염 검진이 비용대비 효과성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 검사비는 인당 4000원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C형간염 전파를 방치했을 때 감염 환자 수 증가에 따른 약값이 더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이 같은 의혹에 국가검진위원회 소속 검진평가위원 A씨는 “국가검진 항목 기준에 따라 사심 없이 평가했다. 당시 C형간염은 기준에 통과하지 못했다. 기준에 맞지 않는 질병이 국가검진에 들어가선 안 되기 때문에 위원회에서 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우 주사형 마약으로 C형 간염 환자가 느는 추세이기 때문에 검진 대상을 확대 권고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진평가위원 B씨는 “위원회에서 검토한 결과 무증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C형간염 검진은 비용효과성이 불확실하다는 결론이다. C형간염 검사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진까지 비용이 많이 든다. 비용효과성 연구의 전제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했다.

정영기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 과장은 “검진항목 심의 절차에 따라 C형간염은 검진도입이 적절하지 않다고 결론이 난 이후 의료계의 의견을 주고받고자 따로 마련한 모임에서 양쪽의 주장이 오간 것”이라며 “정부는 C형간염이 우려되는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진단과 치료를 지원하는 별도의 퇴치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