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끊어지지 않는 은혜의 밧줄

입력 2019-12-20 17:59

본문의 주인공은 야곱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이르는 족장세대 중에서 야곱은 현대사회 물질문명의 사람들과 심성이나 특성이 유사합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가진 온유함이 없었고, 아들 요셉처럼 순전하면서 깨끗한 신앙을 가지고 출발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선택합니다.

야곱은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는 본능적 촉각을 지녔습니다. 태어날 때 에서가 장자로 정해졌는데 이를 빼앗으려 호시탐탐 노리다가 형이 배고플 때 팥죽 한 그릇을 건네고 이를 삽니다. 보이는 팥죽을 넘겨주고 보이지 않는 영적 자산을 쟁취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임의로 잡아당겨 쟁취하려 했기에 미움을 받아 자기 집에서 도망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이 있는 밧단아람 땅으로 가게 됩니다.

라반은 야곱보다 한수 위였습니다. 뛰는 분 위에 나는 분이라고 하지요. 야곱은 우물가에서 보았던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주면 7년 동안 무임금 노동, 즉 종살이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반은 결혼 첫날밤에 라헬 대신 언니 레아를 보내 동침케 하고, 지역의 관습에선 동생이 언니보다 먼저 시집가는 일이 없다고 둘러댑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또다시 무임금 노동 7년에 6년을 더하여 총 20년을 종살이 아닌 종살이로 지내게 됩니다.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빼앗아 도망치고, 20년 종살이의 고난 속에서 어떤 음성을 들었을 것 같습니다. ‘너는 죗값을 치르는 거야.’ 삶이 어려워지고 고난이 반복되고 내면의 양심마저 흔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삶의 집중력을 전혀 흐트러뜨리지 않습니다. 자기 삶에 충실하면서 12명의 아들을 낳고 소떼와 양떼를 늘려 이스라엘 12지파를 구성할 정도의 재력과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비결이 무얼까요. 어떻게 고난의 땅 밧단아람에서 흔들리지 않고 삶의 집중력을 유지했을까요.

성경은 한마디만 합니다. 20절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그렇습니다. 우물가에서 만났던 여자, 라헬이 있었습니다. 한창 피 끓던 청년 야곱이 아름다운 여자 라헬을 얻기 위해 자기 삶에서 전심전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 간접적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자연의 순리처럼 운명에 따른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삶의 방식으로 행하십니다. 야곱에게 있어 라헬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소원을 불러일으켜서 의지를 가지고 일하도록 우연히 사람을 붙여주시기도 합니다.

야곱의 밧단아람 20년 세월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삼촌 라반이 열 번이나 품삯을 바꾸는 가운데 종살이를 했습니다. 자칫하면 집중력 떨어지고 미래가 없어져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습니다. 지식과 지혜를 중시하는 삶 속에서 해석되지 않는 고난이 닥쳐올 때, 삶의 퍼즐이 맞춰지지 않고 마치 싱크홀처럼 바닥으로 쑥 내려가는 좌절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라헬을 찾아야 합니다. 인생의 길이 자로 잰 듯 명료하게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지금의 이 길이 맞는지 걸어가는 이유도 모르겠고, 미래는 불확실한데도 한걸음 내디뎌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 어디 계신가요’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걸음을 내딛는 순간 영적 눈으로 주위를 보면 라헬을 발견하게 됩니다. 매일 아침 지면을 읽는 이 시간, 주일예배의 순간, 사랑하는 배우자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등 일상적이고 평범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영혼의 눈으로 깊이 파악해야 합니다. 그 라헬을 통해 밧단아람 고난의 세월을 이기는 힘이 생겨나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은 20년 밧단아람 시절을 통해 일국을 만드는 영적 단련을 거쳤습니다. 그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상학 서울 새문안교회 목사

◇새문안교회는 130여년 동안 한국의 어머니 교회로서 뿌리 깊은 신앙과 뜨거운 선교정신, 교회 연합의 역할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상학 목사는 연세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 및 미 에모리대와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2017년 제7대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