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스포츠계는 ‘리그오브레전드(LoL)’ 프로게이머들에 대한 ‘노예계약’ 문제가 불거져 홍역을 치렀다.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LoL 국내 1부 리그)를 공동으로 주최하는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와 한국e스포츠협회(KeSPA)는 e스포츠 팬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들이 LoL 리그를 운영하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팬들의 즐거움, 선수들의 권익을 위하는 방식이 아니라 게임사와 협회 중심으로 리그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논란이 된 것은 LCK 운영위원회의 밀실 행정이다. 특히 선수들에게 징계를 내리는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LCK 운영위는 지난 10월 미성년 프로게이머인 ‘카나비’(게임상 닉네임) 서진혁(19)군의 강압 이적 의혹 사건이 불거지자 즉각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운영위가 34일 만에 내놓은 조사 결과는 e스포츠 팬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의혹을 폭로한 김대호 프로게임단 그리핀 전 감독(현 DRX 감독)이 강압 이적의 가해자로 지목된 조규남 그리핀 대표와 동일한 ‘무기한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 감독 징계 사유는 선수들에 대한 폭언 및 폭행이었다. LCK 운영위의 조사는 강압 이적 의혹 때문에 벌어졌는데, 이와 전혀 상관 없는 내용으로 징계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당시 팬들은 “강압 이적을 폭로한 김 감독에게 보복성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청와대에 국민청원도 했다.
당시 LCK 운영위는 팬들의 반발에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했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당시 LCK 측은 선수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리핀 측은 LCK의 징계 발표 직후 기자들을 불러모은 뒤 김 감독의 폭언 문제에 대해 소속 선수들과 얘기를 나눌 자리를 마련했다. 누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사실상 공개한 셈이다.
김 전 감독 징계에 석연치 않은 정황도 드러났다. LCK 측이 폭언 등의 피해자로 판단한 게이머 일부는 김 감독의 행위를 폭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조사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LCK 운영위는 서군의 ‘불공정 계약서’ 등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김 감독 징계를 유보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징계를 둘러싼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LCK 운영위는 지난 11월 그리핀 소속 게이머였던 ‘도란’(게임상 닉네임) 최현준(19)군을 상대로 1경기 출장 금지와 벌금 80만원 징계를 내렸다. 이유는 ‘최군이 고의로 방해되는 행위를 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게임상 인공지능(AI) 프로그램도 최군의 플레이를 ‘고의 방해 행위’(트롤링)로 판단했다고 한다. LoL은 10명의 플레이어가 5대 5로 나뉘어 경기를 치르는데 팀원이 방해 행위를 하게 되면 절대적으로 불리해진다. LCK는 프로게이머들이 사적으로 게임을 할 때도 이 같은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LCK 규정집에는 ‘선수 및 코칭스태프 등 팀 임직원이 어떠한 사유라도 게임 내 제재를 받은 경우 운영진이 재량에 따라 대회 참가 제한 등의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최군의 게임 내 행위 자체가 징계 대상이 아니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LoL 해설자 이현우(31)씨 등 전직 프로게이머들은 최군이 제재를 받은 게임의 대전 기록과 리플레이 영상을 확인한 결과 트롤링이 아니며 1경기 출전 금지는 부당한 징계라고 지적했다. 최군은 “은퇴를 걸고 말하는데 고의 트롤링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군이 현재 소속된 게임단 DRX의 김대호 감독 또한 “최군이 게임을 못한 것은 맞지만 일부러 트롤링하지는 않았다”며 “게임이 안 풀리자 직접 팀원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도 했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e스포츠계에서는 최군 징계에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최군이 ‘카나비 사태’에 대한 LCK 운영위 조사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과도한 징계를 내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최군은 당시 김 감독이 폭행이나 폭언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LCK 조사 결과 및 그리핀의 주장과 반대되는 입장이다.
징계 논란의 배경에는 LCK 운영위의 불투명한 운영 방식이 있다. LCK 운영위는 ‘카나비 사태’에 대한 조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김 감독에게 어떤 근거로 징계를 내렸는지 당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운영위가 어떻게 구성돼 있으며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명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사실이 있다면 이는 명백한 징계 사안이다. 다만 징계 결정 과정이 ‘깜깜이’인 탓에 불필요한 논란이 생기는 상황이다.
LCK 운영위는 최군에게 징계를 내리면서 특별한 내부 조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위는 기존에 LCK 선수에게 징계를 내릴 때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소명을 받는 절차를 거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절차가 없었다. 게임상 AI의 결정만으로 1경기 출전 금지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다. 1경기 승패로 순위가 갈리는 LCK에서 주전 선수인 최군의 1경기 출전 금지는 상당한 타격이다. 이에 대해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관계자는 “LCK 운영위가 과거 유사 사례 등을 검토해 최군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며 “이전에도 운영위 차원에서 징계를 결정하고 대외적으로 상벌위원회 명의로 발표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DRX 측은 최근 LCK 운영위를 찾아 최군 징계가 부당하다고 자체 소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운영위 측은 “리플레이를 보여주는 등 소명 절차를 받아주는 것은 특혜”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LCK 운영위는 카나비 사태 이후 “KeSPA와 함께 조속히 독립된 상벌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밀실 행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차후 같은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위원 선임 과정부터 팬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18일 “LCK 운영위와 완전히 독립된 상벌위원회가 필요하다”며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위원들이 선임돼야 하는 것은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회의록 등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할 필요도 있다”며 “e스포츠가 공정이라는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팬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