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보낸 첫 문자메시지는 “메리 크리스마스”

입력 2019-12-21 04:03

전화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모던 로맨스’에 담긴 내용에 따르면 시작은 1992년이었다. 영국의 한 엔지니어는 친구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최초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메리 크리스마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훗날 이 같은 문자메시지가 남녀의 로맨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구애를 하고 프러포즈를 하고 이별을 통보한다. 연애 상대를 찾을 때도 기계의 힘을 빌린다.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다. “오늘날 스마트폰을 가졌다는 것은, 24시간 연중무휴로 영업하는 싱글 전용 클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중 언제든지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잠재적 연애의 망망대해 속으로 풍덩 빠질 수 있게 된 거죠.”

‘모던 로맨스’는 이렇듯 디지털 시대의 로맨스를 살핀 이색적인 신간이다. 미국의 코미디언인 저자는 “연애와 사랑의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큰 규모로 벌어지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유는 삶의 양태가 달라져서다. 저자가 미국 뉴욕의 한 은퇴자 마을을 방문해 조사했더니 노인 36명 가운데 14명은 유년기를 보낸 집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살던 누군가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 시기는 대다수가 20대 초반이었다. 다른 대규모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1932년 미국의 한 대학에서 부부 5000쌍의 혼인 신고서를 살폈더니 3분의 1이 집 근처에 살던 누군가와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소꿉친구와 웨딩마치를 올릴 확률은 희박하다. 결혼의 정의도 달라졌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배필을 구하는 것은 ‘생존 공동체’를 일구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소울 메이트’를 찾는 작업이 됐다. 결혼 시기는 늦어졌고 짝을 찾는 행태도 크게 변했다. 저자는 사회학자와 팀을 꾸렸고 2013~2014년 뉴욕 로스앤젤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쿄 파리 등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상전벽해에 견줄 만한 연애 양태의 변화를 기록하면서 ‘모던 로맨스’의 현주소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주로 서구 중산층을 대상으로 취재가 이뤄졌지만 한국 상황을 대입해도 어색하게 읽히지 않는다. 온갖 유머를 곁들여 구어체로 풀어낸 문장들도 가독성을 끌어올리는 요소다. 진부하게 여겨지는 내용도 있지만 밑줄을 긋게 만드는 대목도 많다. 저자가 연구 끝에 내린 결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오늘날 사랑을 나눌 상대를 찾는 과정은 복잡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진정으로 가슴을 뛰게 하는 상대를 만날 가능성은 커졌죠.”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