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무슬림에 대해 차별적인 내용을 담은 시민권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이달 초 무슬림이 많이 거주하는 아삼주 등에서 시작된 시위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연방 의회에서 개정안이 최종 통과된 이후 웨스트벵골주와 수도 뉴델리, 뭄바이 등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통행금지가 실시됐고 주요 국가도로와 인터넷도 봉쇄됐다.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15일까지 6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왔다.
지난 10일 연방 하원에 이어 12일 상원을 통과한 시민권법 개정안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까지 3개 인접국 출신 비이슬람교도 이주자들이 종교적 박해에 직면해 인도에 왔을 경우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슬림은 소수 종교가 아니어서 보호가 필요 없다는 게 이유지만 인도국민회의(INC) 등 야당과 인권운동가 등은 모든 종교를 평등하게 여기는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 역시 개정안이 차별적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번 개정안이 되레 소수 집단이 탄압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개정안으로 인해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돼 주민들이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인도는 인구 13억6000만명 가운데 약 80.4%에 달하는 9억명이 힌두교도로 알려져 있다. 무슬림 인구 비율은 13.5%에 불과하지만 숫자는 1억5000만명에 이른다. 11세기 이슬람 세력의 북인도 침략 이후 무슬림이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16세기 무굴제국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힌두교도를 탄압하기도 했다.
이후 영국의 식민통치를 거친 뒤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 갈등으로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3개 국가로 쪼개졌다. 무슬림은 주로 북부에 밀집돼 있으며, 이곳에는 주변 이슬람국가인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출신 불법 이민자들이 많다.
인도에서 무슬림 차별이 노골화된 것은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이 2014년 총선을 통해 10년 만에 재집권하면서부터다. 인도국민당이 힌두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정치세력화한 조직인 데다 인도 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反)이슬람주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고위 정부 관료 중에도 모든 종교를 평등하게 여기는 헌법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16일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전날 오후 자르칸드 주의회의 선거 유세에서 “시민권법 개정 결정은 옳은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에 INC의 지도자이자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의 증손녀인 프리양카 간디가 반발하고 나섰다. 그는 모디 총리를 ‘겁쟁이’라고 부르며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를 두려워하고 학생과 언론인을 탄압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한다”고 비판했다.
시민권법 개정안 통과는 주변국들과의 외교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주변 이슬람 국가들은 물론 인도 내에서 이슬람계 주민이 다수인 카슈미르 지역 등은 정부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