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불법체류하며 돈을 벌던 외국인 노동자가 단속을 피하다 사고로 사망한 것은 업무와 관련 없는 사고이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박성규)는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는 외국 국적의 불법체류자로 지난해 7월 10일부터 경기도 김포 공사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했다. 하지만 8월 22일 점심식사 때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들이 불법취업 외국인 근로자 단속을 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식당 창문을 통해 달아나다 약 7.5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A씨 부인은 지난해 10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 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고, 사업주가 단속을 피해 도주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없다”며 부지급 처분을 했다.
결국 A씨 부인은 “불법체류자의 단속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는 사업주의 도주 지시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사업장의 내재된 위험에 해당하므로 업무상 사고에 해당한다”고 소송을 냈다. A씨 부인은 “사업주는 규정을 위반하고 이 사건 식당에 출입구를 1개만 설치한 잘못이 있고, A씨 사고 후 적시에 응급조치를 안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업주 측에서 이 사건 단속 당시 A씨 등에게 직접 도주를 지시했다거나 도피 방법을 사전에 마련했다고 볼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 사건 사고가 업무와 연관 있다거나 사용자의 지배·관리하에 발생한 사고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이 사고는 A씨가 다소 이례적이고 무리한 방법을 택해 도피하다가 발생한 사고”라며 “따라서 업무에 내재된 위험이 현실화된 사고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출입구 부족으로 식당의 시설상 하자가 원인이 돼 추락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