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북핵 실무협상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6일 북한을 향해 공개적으로 대화를 제안했다. 그는 “일을 할 때”라면서 “우리는 여기에 있고 당신들은 우리를 어떻게 접촉할지 안다”라고 말했다. 17일 오후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판문점 등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한 셈이다.
비건 대표의 제의는 이례적으로 우리 외교부의 공식 브리핑룸을 이용해 이뤄졌다. 특히 “북한의 카운터파트에게 직접 말하겠다”며 제안 상대를 분명히 적시함으로써 대화 의지에 더 힘을 실었다. 그는 “대통령 지시로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 양측의 목표에 부합하는 균형 있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유연하게 협상할 것이며 실현 가능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여러 창의적 방안을 제안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은 비건 대표의 대화 제의를 걷어차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과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실무회담이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난 이후 냉각기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길은 정반대여서 우려스럽다. 지난 3일 외무성 부상 명의 담화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언급해 도발을 암시했다. 지난 7일과 13일에는 ‘중대 시험’을 했다고 연이어 발표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엔진 시험을 했음을 시사했다.
북한이 임의로 정한 연말 시한에 매여 기회를 놓치게 되면 대화의 탄성이 급감할 수 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의 도발까지 감행할 경우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대화 국면이 시작된 이전 상태로 되돌아갈 우려가 크다. 이런 경우라도 북한이 뭔가 받아내기는 쉽지 않다. 미국이 자국민 안위와 직결돼 있는 핵 협상에서 쉽게 양보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철저한 비핵화를 받아내기 위해 제재와 압박을 강화할 공산이 커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적 개성 때문에 군사적 옵션이 채택된다면 한반도로서는 매우 불행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북한 입장에서는 대화 모멘텀을 잘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비록 성과가 불투명하더라도 일단 협상을 재개해 대화 의지와 최소한의 신뢰를 재확인하는 게 요긴해 보인다.
[사설] 北, 비건의 공개적인 대화 제의에 응하라
입력 2019-12-17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