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은행은 내년도 우리 경제가 2.3% 성장하고 소비자물가는 1.0%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와 함께 성장도 고려하는 유연한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은이 2년 연속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수년째 하회할 것으로 전망했다면 대응방안도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경기와 물가가 부진한 상황에 대응하는 중앙은행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금리인하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서도 추가 금리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새해 금리가 추가로 인하된다면 이는 우리 경제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저금리 시대에 진입함을 의미한다. 정책 당국이 추가 금리인하의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겠지만 최근 대내외 여건, 금융시장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추가 금리인하의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최근 과열 기미를 보이는 부동산 시장도 마음에 걸린다. 무엇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내릴 수 있을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이미 미국보다 낮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향후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축통화 보유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금리를 계속 내리면 자본 유출이나 거주자의 달러화 선호 증대 등으로 외환시장 불안이 초래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금리정책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정책의 활용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선제적 정책 대응을 위해서는 과거에도 활용됐던 공개시장 조작이나 대출정책 등 전통적 정책수단과 함께 비전통적 수단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금융위기 과정에서 등장해 이제는 주요국 통화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은 양적완화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시장금리를 낮추는 정책이다. 한은도 제도적으로 금융시장에서 국채 등을 사는 방법으로 양적완화를 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 있다. 물론 금리정책부터 최대한 활용한 후 양적완화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금리를 0%까지 낮출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지준에 이자를 줄 수도 있고 장기채권을 사고 단기채권은 파는 방법으로 금리정책과 병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기준금리가 플러스인 상황에서는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계속 한은으로 환류되면서 정책 유용성이 제약될 가능성이 있다. 시장금리 인하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금리인하와 성격이 같아 유사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다른 방법은 미 연준 등이 활용한 선제적 지침을 도입하는 것이다. 일례로 ‘금융안정이 침해되지 않는다면 물가상승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라고 밝히는 것이다. 최근 미 연준은 한발 더 나아가 ‘물가상승률이 지속적으로 2%를 하회할 경우 향후 2%를 상회하더라도 이를 허용할 수 있다’라고 밝히는 방안을 ‘보완적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검토하고 있다. 장기간 정책금리를 낮은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밝힘으로써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금리 불확실성도 완화하는 방안이다. 금리정책이나 양적완화 모두 제약이 있는 경우에 고려해볼 수 있는 정책수단이다.
현재의 정책수단으로 안 되면 통화정책의 체계를 새롭게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다. 물가목표 상향 조정이나 물가수준목표제 도입 등이 그것이다. 벤 버냉키 전 연준의장은 금리가 0%에 묶여 있는 경우 한시적인 물가수준목표제 도입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아직 중장기적인 연구과제의 성격이 짙다.
추가 금리인하나 양적완화, 선제적 지침 모두 한은이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각각의 정책에 대한 찬반 논리도 명확한 만큼 실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알 수 없다.
프로스트는 두 갈래 길에서 한 길을 선택한 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시로 노래했다. 다행히 한은은 물리적인 갈래 길에 직면한 것은 아니라서 한 길만을 갈 수도, 여러 길을 동시에 갈 수도 있다. 어려운 시기에 맞서 중앙은행이 자신감 넘치는 행보로 새해 우리 경제의 앞길을 열어가 주기를 기대해 본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