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레드라인(대북정책 전환의 한계선)에 근접할 정도로 대미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는 가운데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5일 한국에 도착했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비건 대표가 판문점에서 북측과 접촉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번 방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의 분수령으로 여겨진다.
비건 대표는 이날 오후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 등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입국 직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이 북한과의 판문점 회동 계획 등을 물었지만 비건 대표는 일절 답하지 않았다.
전날 북한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서 또다시 ‘중대한 시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핵’을 두 차례나 언급했다. 시험은 지난 13일 밤 10시41분부터 7분간 진행됐다. 지난 7일에 이어 엿새 만에 ‘중대한 시험’이 이뤄진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위한 로켓엔진 성능 시험 등으로 추정된다.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최근 연이은 국방과학 연구 성과들은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는 데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군 박정천 총참모장도 담화를 내고 “우리는 거대한 힘을 비축했다”며 “연구시험의 자료와 경험, 새로운 기술은 미국의 핵 위협을 확고하고도 믿음직하게 견제, 제압하기 위한 또 다른 전략무기 개발에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총참모장은 또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은 우리를 자극하는 그 어떤 언행도 삼가야 연말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적대세력과의 대화도, 대결도 낯설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대미 협상 시한으로 정한 연말이 다가오자 ICBM 발사 재개 움직임을 보이며 ‘여차하면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앞서 미국을 향해 말했던 ‘크리스마스 선물’로 ICBM을 발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은 2017년에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 선물’로 ICBM ‘화성 14형’을 발사한 바 있다.
북한이 비건 대표 방한 하루 전에 동창리 중대 시험 사실을 공개한 의도를 두고도 ‘미국과 접촉하기 위한 압박’이란 해석과 함께 ‘더 이상 미국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건 대표는 방한 기간 중 북측과 만날 의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기자들에게 “미국의 방침은 변한 것이 없고, 북한도 이를 알고 있다”며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북한과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금은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비건 대표를 만난다. 문 대통령의 비건 대표 접견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전이던 지난해 9월 이후 1년3개월 만이다. 방한 시 주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나 김현종 안보실 2차장을 만났던 비건 대표를 문 대통령이 직접 접견하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 상황이 위중하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비건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공식적인 대북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반도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과 비건 대표 간에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내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욱 박세환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