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켜는 ‘구리 박사’… 미·중 훈풍에 글로벌 경기 ‘온기’

입력 2019-12-16 04:06

침체된 경기가 나아진다는 ‘좋은 소식’이 곳곳에서 꿈틀거린다. 특히 ‘구리 박사’(닥터 코퍼)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대표적 경기 선행지표인 구리 가격이 상승 흐름을 탔다. 구리 가격이 오른다는 건 건설업이나 제조업에서 투자가 이어지면서 구리 수요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협상에 합의하면서 ‘원자재 수요 증가’ 기대감을 키운다. ‘미·중 훈풍’은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안전자산에 몰렸던 투자자금이 위험자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5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현지시간 13일 거래된 구리 선물(3개월)은 파운드당 2.78달러로 장을 마쳤다. 장중 2.83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지난 5월 7일(2.86달러·장중 고가 기준) 이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우기도 했다. 한 달 전 2.64달러, 지난 5일 2.66달러에 이어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현물가격 오름세도 가파르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지난 13일 거래가는 t당 6195달러로 2개월 전(5868달러)보다 5.6%나 뛰었다. 시장에서는 “미·중 1단계 무역협상 합의 소식이 글로벌 수요 증가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구리는 지정학·정치 영향을 덜 받는 원자재로 꼽힌다. 세계 곳곳에서 생산되는 데다 자동차·건설·가전 등 제조업 전반에 골고루 쓰인다. 건설공사가 많아지거나 전자기기 생산이 늘수록 구리 수요는 는다.

반면 경기가 침체로 접어들면 구리 수요가 줄어 가격 하락을 유발한다. 이에 투자자들은 경기를 미리 예측해 구리 선물을 매매하고, 구리 선물가격은 경기 선행지표 역할을 하게 된다. ‘닥터 코퍼’라는 명칭도 이 때문에 붙었다.

구리 선물가격 움직임에서 보이듯 얼어붙었던 세계 경기는 차츰 녹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예측하는 글로벌 경기선행지수(CLI)는 22개월 만에 반등했다. 지난 10월 99.12로 전달(99.11)보다 0.01포인트 올랐다. 한국의 10월 CLI는 98.88로 전월(98.85)보다 상승했다. 2017년 5월(101.74) 이후 29개월 만의 상승 전환이다.

OECD의 CLI는 보통 6~9개월 이후의 경기를 예측한다. 기준치(10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하강을 의미한다. 100 이하에서 상승세를 보이면 경기 회복, 하락세면 경기 수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를 토대로 일부에선 ‘경기 바닥론’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 회복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박희찬 미래에셋대우 글로벌자산배분팀장은 “글로벌 경기 회복 국면이 4분기에 이미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국내 주식시장에도 온기가 감돈다.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증시 관련 금융상품에 돈이 몰리기 시작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주(9~13일)에만 국내 주식형 펀드에 1704억원이 유입됐다. 이들 펀드의 주간 수익률은 4.14%였다. 해외 주식형 펀드(777개)의 주간 수익률(1.02%)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와 달리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국내 채권형 펀드에서는 4250억원이 유출됐다. 단기 부동자금이 머무는 머니마켓펀드(MMF)에서도 1조1110억원이 빠져나갔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